위로가기 버튼

창조의 동력학

등록일 2014-03-27 02:01 게재일 2014-03-27 19면
스크랩버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

다윈의 `종의 기원`은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1859년에 출판된 이 역사적인 저술은 현대인들에게 가장 넓고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책일 것이다.

사람은 원숭이와 같은 조상에서 뻗어 나왔다는 충격적인 종의 진화의 이론은 종은 신의 피조물로서 불변하는 것이라는 창조설의 진리성을 그 근저에서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신이 세계를 창조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문제는 근원적인 질문이며, 사람들의 존재론적 위치를 재설정하게 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 진화론을 악마의 사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창조설이 진리라면 그것은 어떤 시험에도 굴하지 않는 논리를 구축해야 하며, 때문에 진화론은 역설적으로 창조설로 하여금 논리를 강화시킬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 주는 셈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조물주에 의한 우주 창조를 기대하면서도 다윈적인 진화론에 푹 빠져 있는 듯하다.

이 다윈이 종의 기원을 저술할 때 자연과학들, 생물학이나, 유전학이나, 지질학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말하자면 그때 지구의 나이는 가장 선도적인 학자조차 9만년을 헤아릴 정도였고, 진화의 계단을 연결해줄 생물 화석들의 발견도 지극히 부분적이었다.

아주 많은 것들이, 따라서 다윈의 창조적 상상력에 의해 채워져야 했다. 질리언 비어라는 사람이 쓴`다윈의 플롯`이라는 책에 따르면, 종의 기원은 이론적 저술일 뿐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살아가던 시대의 여러 첨단적 학설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야기의 뼈대를 세우고, 빈 데를 채워 넣어 플롯을 짜 맞추고, 세목들에 살을 붙여, 자기 당대의 수준을 넘어서는 진화의 이야기를 창조해 놓았다.

이 `종의 기원`과 다른 여타의 생명력 있는 저작들을 살펴보면, 좋은 저술이나 이론이라는 것은 그때까지의 지식들을 얼마나 요령껏, 체계적으로, 자세하게 모아놓았는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요, 당대 지식의 결핍 지점을 메울 수 있고, 또 그 학설이라는 `이야기`의 결말까지도, 혹은 그 너머의 이야기까지도, 풍부한 상상력과 통찰력, 예지력을 발휘하여 내다볼 수 있는 창조력에 의해 나타나게 됨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 창조력을 따라서 기존의 것을 종합하면서 그 수준을 뛰어넘는 비약을 가능케 하는 힘으로 재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창조력에 의해서 나타나는 새로운`발명품`은 무엇보다 외견상 모순되는 논리들이 혼거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예를 들어,`종의 기원`에서는 자연선택의 원리로서의 생존경쟁을 고도로 강조하고 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상호 의존에 대한 설명도 함께 존재함을 볼 수 있다.

마치 삼각기둥에 사각기둥을 겹쳐 놓을 때 생겨나는 논리의 빈틈 같은 것이 발견되는 것인데, 나는 이것을 창조적 빈틈, 비약을 위한 빈틈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종의 기원`을 문제작으로 만들어주며, 이 바탕 위에서 크로포트킨처럼 상호부조를 강조하는`만물은 서로 돕는다`같은 저작도 나올 수 있었고, 최근 들어서는 페미니즘과 진화론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려는 시도로 연결되기도 한다.

`참된` 창조적 비약은 빈틈, 여백을 갖는 논리의 탄생일 수밖에 없고, 이 이야기의 결핍된 부분을 메우고자 할 때 비로소 인간은 새로운 창조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본래의 자기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태도로는 결코 참된 창조를 이룰 수 없으며, 논리의 상충과 모순을 감당하면서 상상이 가능한 최대치를 모색하는 행위 속에서 비로소 새로운 계단의 창조가 가능한 것이다.

두려움 없이 종합하고, 접합시키고, 접붙일지어다. 혼란과 혼돈 위에 새 질서가 싹틀 것을 믿고. 이것이 창조의 동력학이다.

방민호칼럼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