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이준규 지음 문학동네 펴냄, 104쪽
기존 `시`의 모습에서 철저하게 벗어나 전혀 새로운 시의 문법을 보여주는 시인 이준규(44)의 다섯번째 시집 `반복`(문학동네)이 출간됐다. 네번째 시집 `네모`와 한 주 상간으로 연이어 출간된 이번 시집은 정직하고 그래서 강렬한 제목 아래 55편의 시를 담고 있다. 각 시편의 제목만 훑어보아도 이번 시집의 성격을 짐작해볼 수 있다. 동일하거나 조금 변주된 비슷한 제목의 시들이 번호의 구분 없이 놓여 있는데 하나의 단어가 어떤 실체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음을 보여줬던 이준규의 시를 줄곧 따라 읽어온 독자들이라면 이러한 구성이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일상적이고 어렵지 않은 단어와 그것으로 이뤄져 있는 문장이 이준규를 통해 시라는 옷을 입고 태어나면 지금까지 만나본 적 없는 생경한 `시`로 다가온다. 그래서 그의 시는 소통을 거부한 난해한 것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것은 그의 시가 맥락이 있는 이야기 혹은 정보 전달의 기능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송종원이 유아기 때 처음 모국어를 접하는 방식에 대한 설명으로 이번 시집의 해설을 시작하고 있고 이준규가 언어를 대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익숙한 단어를 학습된 의미 안에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감각적 울림, 혹은 그것을 둘러싼 다른 상황이나 감각을 통해 대상을 새로이 인식하는데 그것은 마치 말과 글을 모르는 시기의 언어감각을 다시 되살리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를테면 이준규가 그리는`딸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과일이 아니다.
“딸기가 그릇에 담겨 있다. 딸기는 하얀 바탕에 노란 꽃무늬가 있는 손바닥 크기의 그릇에 담겨 있다. 딸기는 별로 크지 않은데, 반으로 잘려 있다. 절단된 딸기 무더기. 딸기는 작은 꽃무늬가 있는 하얀 그릇에 담겨 있다. 나는 그것을 하나 둘 먹기 시작한다. 딸기를 먹으니 기분이 좋고 딸기를 먹으니 가슴의 통증이 있고 그렇게 딸기를 계속 먹으니 가슴의 통증은 사라진다….”_ `딸기`전문
조금도 어렵지 않은 언어들로 이뤄진 이 시가 생경하게 느껴진다면 그간 우리는 `딸기`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딸기`에 얽힌 이야기나 `딸기`를 매개로 해서 얻어진 감정, 그것을 써내려간 것이 `시`의 익숙한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준규는 `딸기` 자체에 집중한다. 주변의 다른 대상들을 끌어들이는 것도 결국은`딸기`를 말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딸기`가 반복될 때마다 그것이 읽는 이의 내부에서 다른 감각들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준규의 시에서 보여지는 반복은 언어 자체가 가진 다양한 감각의 울림을 확인하게 하는 실험인 동시에, 의미의 부재를 확인하는 `포르트-다` 놀이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준규의 시에서 부재하는 것은 의미만이 아니다. 그의 시에 특히 많이 등장하는 말은`그것`이다. 언어의 불확정성과 가변성만큼이나 규정하기 어려운, 따라서 말의 움직임과 그 관계 속에서 매번 다르게 그 존재와 가치를 따져 물어야 하는 미지의 대상은 가령 이런 식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비스듬히 추락한다. 모든 것처럼. 그것은 비스듬히 추락하는 희망이자 환멸이다. 그것은 손가락을 들어 그것을 긁는다. 그것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그것은 앉았다 일어나고 일어났다 앉는다. 그것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렇게 반복한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성실함을 보여주며 그것을 반복하고 있다. 그것의 생은 단순하며 그것의 일생은 비극적이다….”-`그것` 전문
의미의 부재를 확인하게 하는 시, 구체적 대상을 지워버린 시. 이런 시의 마지막에서 결국 의미도 실체도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 드러나면 그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허무와 우울이다. 문학평론가 송종원이 시집의 해설에서 이준규의 시에서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펼치기도 전에 그것의 불가능성을 먼저 의식하는 사람이 떠오른다”고 언급한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가 아닐까.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