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참 많이도 오는 날이다. 필자는 역시 학생들과 학교 도서관에 있다. 지금은 수요일 밤 9시가 훌쩍 지난 시간. 이번 주부터 주제가 있는 반딧불 도서관이 시작된다. 첫 번째 주제는 시 한 편 이상 외우고, 외운 시에 대해 설명하기. 인문학이 죽은 스마트 시대에 시 외우기가 말이 되느냐고 하겠지만 자연을 닮은 학생들이 있는 산자연학교에서는 가능하다.
도서관은 항상 조용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지금 이곳의 모습을 보면 낯섦을 넘어 화가 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한 무리의 학생들이 도서관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자연학교 도서관은 침묵의 공간이 아니다. 학생들은 성실히 반딧불 도서관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또래 학생들이 학원이나 공부방에서 일방적으로 죽은 지식을 주입받고 있을 시간, 산자연학교 학생들은 비록 작은 도서관이지만 서가를 순례하며 스스로 지혜를 습득하고 있다. 자신이 외울 시를 찾고, 시의 의미를 생각하는 학생들은 이미 대문호(大文豪)들이다. 비록 시집이 많지 않아 필자의 차에 있는 책까지 가져와야했지만 학생들은 시인들이 직접 사인(sign)한 책을 신기해하며 빗소리가 묻힐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듯했다. 그 누군가가 필자인 듯해서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도저히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잠시 도서관을 나오는 필자 뒤로 `공부는 왜 해야 하는지, 도대체 공부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배워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말들이 계속 따라 왔다.
학생들의 시 외우는 소리가 빗소리 같았다. 마른 대지를 적셔 주는 봄비, 그래서 수많은 생명을 깨우는 봄비. 지금 읽고, 외우는 시들이 우리 학생들의 메말라 버린 마음을 적셔 주어, 잠자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과 꿈을 깨워주길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에게도 줄탁동시(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어미 닭이 밖에서 쪼고 병아리가 안에서 쪼며 서로 도와야 일이 순조롭게 완성됨을 의미함)와 같은 교육이 꼭 이뤄지길 기원했다.
필자의 이런 생각에 추임새를 넣어주기라도 하듯 어디선가 개구리 소리가 들렸다. 아직 겨울옷을 벗지 못하고 있어서인지 개구리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절기가 무엇인지를 떠올리려고 할 때 다시 들리는 개구리 소리. 소리를 찾아 두리번거릴 때 청개구리 한 마리가 도서관을 향해 느림보 점프로 가고 있었다. 늦은 밤 아이들의 시 외우는 소리를 빛 삼아 도서관을 찾은 개구리! 아이들과 같이 하고자 하는 마음은 잘 알지만, 혹 아이들에게 방해될까봐 어둠 속으로 놓아주었다. 마음에 드는 시 한 줄을 물고 가는 개구리를 배웅하고 돌아오면서 필자는 깨달았다. 아이들의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얼마나 좋은지,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 시간도 안 돼 현우가 시 한편을 외웠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낭송 했다. (대구에서 전학 온 정현우 학생은 산자연학교 학생회장이다) 봄비가 세차게 장단을 맞춰 주었고, 아이들은 저마다 희망의 나이테를 마음 깊이 새겼다.
`밥이 있다 / 법이 있다 // 밥 속에 법이 있고 / 법 속에 밥이 있다 // 밥이 법을 먹으면 콩밥이 되고 / 법이 밥을 먹으면 합법이 된다 // 밥이 법이다 / 법이 밥이다`(김용화 `밥과 법`)
현우가 묻는다. “선생님, 중학교는 의무교육 아닌가요?”, “맞다”, “그런데 왜 우리는 많은 돈을 내고 학교에 다녀야 해요?”, “…”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얼마 전 교육청에서 온 컨설팅 결과 공문을 그대로 말해줄까 생각하다 차마 말하지 못하고 무책임하게 “미안하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필자를 위로하듯 아이들은 더 소리 높여 시를 외웠다. 언제 다시 왔는지 개구리도 아이들에게 힘을 보태 줬다. 교육 복지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