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옮긴지 한 주가 지났다. 지인의 말을 빌리면 산자연학교 선생으로 입학한지 정확하게 한 주가 지났다. 여러 번 학교를 옮기면서 처음은 언제나 낯설었지만, 설렘과 기대가 있기에 두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낯섦이 좀 두려웠다. 그러나 필자에겐 필자를 믿고 응원해주시는 권영주 교감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지인들이 있기에 두려움과 망설임은 곧 도전과 희망이 됐다.
산자연학교가 있는 이 곳엔 그 흔한 pc방 하나 없다. pc방은커녕 작은 슈퍼도 없다. 학생들은 일요일 기숙사에 들어오면 스마트 폰을 스스로 낸다. 마치 소도처럼 빠르고, 화려하고, 방부제에 절어진 것들은 모두 출입금지다. 시간이 정직한 이곳은 밤을 잠 못 들게 하는 네온사인은 남의 나라 이야기다. 도시 별빛이 흐린 이유는 밤을 방해 받았기 때문이라는 걸 이곳에 와서야 알았다.
이 글의 초고를 쓰고 있는 곳은 산자연학교 도서관, 시간은 밤 9시! `늦은 시간까지 도서관에서 뭐하지?`라고 의문을 가지는 분들도 있겠다. 그리고 밀린 일 때문이라고 단정지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니다. 많은 학생들이 학원에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이 시간, 산자연학교 전교생은 학교도서관에 모였다. 이 곳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고, 수학 문제를 토의하고, 이번에 새끼를 낳은 학교 토끼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의견이 나뉜 수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밤 9시에 수학 선생님을 모시고 설명을 듣는다. 무슨 이상적인 교육 영화를 찍고 있냐고 하겠지만, 사실이다. 이 이야기는 서울, 경기, 충북, 부산 등 전국에서 모인 산자연학교 학생들의 2014년 3월 6일 목요일 밤 9시의 실제 모습이다. 다른 아이들이 스마트 폰에 빠져 자신들의 영혼을 잃어가고 있을 때, 산자연학교 학생들은 자연의 품에서 자연을 닮은 영혼을 키우고 있다. 다른 아이들이 학원과 무거운 책가방에 가위눌려 하늘 한 번 제대로 못 올려다 볼 때 산자연학교 학생들은 하늘을 그리며, 별과 이야기를 한다. 산자연학교의 아침은 언제나 스스로 시작된다. 아이들을 깨우는 어머니의 짜증섞인 소리는 없다.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먹는 아침은 더 말이 안 된다. 감사할 줄 아는 산자연학교 학생들은 자신이 먹은 그릇은 자신이 씻는다.
학교의 세대를 구분지울 때 종소리가 하나의 기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날로그 종소리와 디지털 종소리! 필자는 두 종소리를 다 경험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필자는 국민학교 저학년까지 선생님들이 직접 치시는 종소리를 들으며 공부를 시작하고 마쳤다. 현관 중간에 걸린 종은 고학년들에겐 제일 큰 장난감이었다. 종을 치는 선배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국민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현관의 종소리 대신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세련된 종소리를 들었어야 했다. 그 때의 서운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비록 단순했지만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아날로그 종소리를 필자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런데 그 종을 30년 만에 산자연학교에서 다시 만났다.
이 글을 쓰는 내내 필자 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인섭이가 뭐하냐고 묻는다. 그래서 너희들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하니까 그럼 마지막은 자신이 쓰겠다고 한다. 그래서 기꺼이 그러라고 했다. 신인섭은 대전에서 온 학생으로 중학교 2학년이다.
“우리들은 남들 다하는 공부도 못하고, 남들이 유치하다고 하고, 보잘 것 없다고 하는 거에 웃고 떠들고 화내고 싸우며 하루를, 그리고 일주일을 보냅니다. 남들이 보기엔 시간 낭비, 돈 낭비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적어도 커서 쓸 데 없는 어려운 교과목을 배우는 시간에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며 추억을 쌓는 것이 정말 큰 인생의 변환점이 될 거라는 것을 잘 압니다”
비록 일주일밖에 안 지났지만, 필자는 산자연학교 교사로 입학 것이 너무 행복하다. 이제야 교육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