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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오름달

등록일 2014-03-04 02:01 게재일 2014-03-0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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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

3월 들자 학교마다 만국기마냥 현수막이 내걸렸다. “진심으로 입학을 축하합니다.” 길게는 12년에서 8년을, 짧게는 3년을 기다린 입학. 마음속에 설렘 가득한 희망 풍선을 품고 교문을 들어서는 걸음걸음마다 봄꽃이 활짝 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모두 모두 아름다운 결실을 꼭 이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결실들이 풍선을 타고 이 사회 어두운 곳으로 날아가 환한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

3월을 물오름달이라고도 한다. 말 그대로 `물 + 오름 = 달(月)`이다. 지금 산과 들에 나가보면 이 말의 의미가 눈으로, 마음으로 확 와 닿을 것이다. 여기서 `물`이란 바로 생명이고, 희망이고, 꿈이다. 산수유는 가지마다 노란 희망을 밀어 올렸고, 경쟁하듯 매화는 만개할 준비를 마쳤다. 산과 들엔 겨울을 이겨낸 봄나물들이 푸른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위로 곧 산수유와 매화, 목련, 개나리가 화려한 봄 수채화를 그릴 것이다. 봄과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연과 아이들은 분명 하나다.

필자가 있는 학교는 입학식을 3월 2일 일요일에 했다. 학생 모집 단위가 전국이라 서울, 경기도, 부산 등 원거리에 있는 학부모님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입학식 내내 가슴 한 편이 아렸다. 그리고 이 사회가 너무 축하의 기분에 빠져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잊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좋은 일인지도 모른다. 과거에 빠져 현재를 놓치고 미래까지 망치는 일이 허다하니까. 그런데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분명 쉽게 잊는 것에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것 같다. 과거를 망각함으로써 미쳐가고 있는 이웃 나라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렇다고 과거에 빠져 살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대한민국 언론을 흔히 냄비에 비유 하곤 한다. 쉽게 끓었다가 더 쉽게 식어버리는 냄비의 특성을 아는 독자들은 분명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최근 들어 냄비의 쓰임이 참 많아졌다. 냄비 언론, 냄비 정치 등. 냄비와 교육이 결합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냄비의 수식력은 교육이라고, 또 대한민국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냄비 교육, 냄비 대한민국!

식생활문화가 변하면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많은 이들은 아직도 가마솥에 대한 그리움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모두들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비록 힘든 시절이었지만, 오히려 그때가 더 살기 좋았다`고 한다. 이런 역설이 가능한 이유는 뭘까. 아마도 그건 가마솥에는 가족이 있고, 사랑이 있고, 정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가마솥이 사라지면서 가족도, 사랑도, 정도 모두 냄비에게 빼앗겨 버렸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모든 언론의 일면은 신입생 환영회에서 뜻하지 않은 참사를 당한 부산외대 학생들 이야기로 도배됐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일면에는 그런 기사가 없다. 언론도 언론이지만 학교 또한 마찬가지다. 입학식에서 경주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위한 애도의 시간을 갖는 학교가 과연 몇 곳이나 될까? 우리는 꽃 한 번 제대로 피워보지 못하고 저버린 희생자들과 이제 한 평생 입학과 졸업 시즌만 되면 마음에 묻은 자녀 생각에 통곡할 유가족들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또 입학생들과 재학생들은 “내가 무의미하게 보낸 오늘이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라는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일 분 일 초도 절대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참 스승에게 참 교육을 받을 준비, 감사와 나눔을 배울 준비, 꿈과 희망을 찾을 준비!”가 다 된 듯하다. 과연 학교는, 교사 아니 쌤들은 준비가 됐는지 묻고 싶다. 그냥 형식적으로 현수막만 내 걸고 모든 준비가 됐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어떻게 되었던 시간만 가면 월급이 나오니까 좀 더 수월한 업무를 맡기를, 아주 말 잘 듣는 학생을 만나기를 바라고만 있는 건 아닌가. 아마도 그럴 것 같다.

죄스러운 마음으로 불의의 사고로 희생된 부산외대 학생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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