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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이 탱자가 되고 마는(橘化爲枳) 학교

등록일 2014-02-25 02:01 게재일 2014-02-2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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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 시인·오천중 교사

학교에서 2월은 마중물 달이다. 학년을 마치고 새로운 학년을 준비하는 2월. 어떻게 마중물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분명 신학기의 결과도 달라진다. 상수도 시대에 지하수를 끌어 올리는 펌프 이야기를 한다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소통이 부재한 시대에 마중물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소통의 부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또 어느 특정 집단만의 일도 아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정치와 교육계다. 일방통행뿐인 정치권은 유치한 편 가르기 싸움에 빠져 우리 땅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 우리를 얼마나 얕잡아 보았으면 일본은 조금의 미안함도 없이 연일 광(狂)적인 이야기를 쏟아낼까. 하지만 국회에선 큰소리를 잘만 치던 국회의원 중 그 어느 누구도 일본을 향해 제대로 된 쓴 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막말과 막가파식 행동에 맞서 싸우는 건 초등학생을 포함한 시민들이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마중물은 역시 국민이다. 어떻게 국회만 들어가면 사람들이 돌변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국회가 사람을 바꾸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국회를 바꾸는 것인지를 생각하다 떠오른 것이 바로 “귤화위지(橘化爲枳)”다.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초나라 임금이 제나라 명재상 안영을 놀려주려고 그의 앞에서 한 죄인을 불러 놓고 말했다. “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 하는 모양이군요” 그러자 안영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강의 남쪽에 있던 귤을 강의 북쪽으로 옮기면 탱자가 되고 마는 것은 토질 때문입니다. 저 제나라 사람이 제나라에 있을 때는 도둑질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초나라로 와서 도둑질을 한 것을 보면 초나라의 풍토가 좋지 않은가 하옵니다”-`안자춘추(晏子春秋)`

귤이 탱자가 되는 곳이 국회 말고 또 있다. 바로 학교다. 학부모들은 귤을 넘어 한라봉, 천혜향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니면 굳이 천혜향이 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향을 지닌 귤로 자라길 바라면서 자녀들을 학교에 보낸다. 그런데 교육 현실은 어떤가. 분명 집에서는 귀한 귤과 같은 학생들이었는데, 학교에만 가면 대부분이 탱자가 되고 만다. 아니 탱자조차 못 되는 학생들이 더 많다. 그들 중 일부는 탱자나무의 가시가 돼 잔인하고 무서운 방법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왜 학교에만 가면 귤이 탱자로, 또 무서운 탱자나무 가시로 변할까. 사회가 발전하고, 그 발전에 탄력을 줄 많은 시스템들이 각 분야에서 개발 운영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세계가 부러워할 성공을 거두었으며 성공 신화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하지만 이 나라 교육은 사회 발전 정도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교육은 더 황폐화 되고 있으니 문제는 문제다. 인성교육, 자유학기제 등 최근 쏟아지고 있는 수많은 교육 제도들만 봐도 우리 교육이 지닌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 수 있다. `공교육 정상화 촉진·선행교육 규제 특별법`이라 불리는 일명 “선행학습 금지법”이라는 것까지 나왔으니 할 말 다했다. 자생력을 잃은 교육은 이제 법이 아니면 안 되는 살벌한 곳이 돼 버렸다.

분명 새로운 교육을 위한 마중물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녹이 가득한 구정물만 나오는 걸까. 그 이유는 바로 마약보다 더 중독이 강한 `성적`때문이다. 대한민국 교육은 `성적의, 성적에 의한, 성적을 위한` 교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나라 교육에서 학생들은 그 어디에도 없다. 다만 성적의 하수인이 되어버린 쌤들에게 주눅이 든 탱자들만 있다.

다음 주면 신학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예전과 비슷한 교육 시스템에, 학생들을 탱자로 만들어 놓고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는 뻔뻔한 쌤들이 그대로 있는 한 올 해 교육도 참 그렇고 그럴 것 같다. 언제 우리 교육계엔 귤을 천혜향으로 길러낼 신선한 대통물이 콸콸 넘칠까. 성적의 노예가 된 이 나라 국민들을 구원할 교육의 메시아가 속히 강림하시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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