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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철강업의 새로운 도전과제

등록일 2014-02-24 02:01 게재일 2014-02-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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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시니어 이코노미스트

경제이론상 가격은 시장에 나온 상품의 공급과 이를 구매하려는 수요가 균형을 이루는 수준에서 결정된다. 그런데 현실경제에서는 이론대로 적용되는 경우란 거의 없다. 이는 다양한 규제나 법적 제한, 조세, 독과점 등이 정상적인 가격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나 기술과 기술, 산업과 산업간 융·복합을 통한 혁신의 결과물이라면 공급자가 가격결정력에서 우위를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 또는 산업이 생존하거나 지속적인 성장을 하는데 있어 반드시 시장지배력 또는 가격결정력이 높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포항지역의 경우를 살펴보자. 과거 우리나라가 개발도상 단계에 있을 때는 포항철강업계가 국내 철강시장에서 독점적 공급자로서 지위를 누리기도 했다. 이 시기의 철강시장은 항상 공급부족 상태였고 다양한 방식의 규제를 통해 철저하게 보호됐다. 결국 가격결정도 시장의 수급상황이 아니라 정책적 차원에서 결정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국내 시장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개방된 상태이고, 고도성장기의 국산품애용과 같은 호소는 통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품질의 고하를 불문하고 만드는 족족 팔렸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사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철강산업이 성숙단계에 접어들자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이제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려야만 생존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세계경기의 변동에 따라 포항경제는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포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루빨리 과거의 영광은 잊어야 한다. 독점적 지위에 있을 때의 사고방식과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철강제품의 수요처인 자동차, 조선, 건설 등의 기업들을 귀한 고객으로 받들고 그들의 요구를 존중해야 한다. 맨 처음 수출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바이어를 찾아다닐 때와 같은 자세와 심정으로 국내 시장이나 수요처에 접근해야만 하는 것이다.

일본의 철강업계에서도 이미 오래전 철강 공급자와 수요자의 관계가 뒤바뀐 바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위기를 자동차회사나 조선회사와 같은 수요자와의 밀접한 협업관계로 탈출했다. 이들의 협업은 상상 이상으로 끈끈하다. 예를 들어 닛산이나 토요다와 같은 자동차회사가 고출력엔진이나 고강도 차체의 개발 입안 단계부터 적합한 특수 강재의 개발 가능성을 타진한다. 이에 대해 신일본제철은 프로젝트팀을 구성하고 자동차회사가 필요로 하는 철강소재의 개발 필요기간, 타당성, 예상원가 등을 산정한 후 적정한 공급가격라인을 산정하고 협의한다. 당연히 수급 양측의 요구조건(완성시기, 필요수량, 단가)이 단번에 균형을 맞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새로운 차종이 개발된 이후 출시되기까지는 성능실험과 테스트만으로도 수년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개별 프로젝트의 소요기간은 가볍게 10년을 넘길 수도 있다. 신일본제철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철강재의 개발노력과 향후 신차 출시 이후 지속적인 공급이 확보되더라도 해당 강재개발에 소요된 총 소요기간 이후에나 제대로 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동차회사는 신차개발프로젝트의 진행기간 중 신일본제철이 절대로 중도에 포기하지 않아야한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양자의 관계는 단순한 공급자와 구매자의 관계를 넘어 공동운명체로서의 협업 관계와 신뢰가 구축돼 있어야만 가능하다.

포항의 철강업계가 앞으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새로운 성장 동력의 모색을 외치기에 앞서 철강산업 활력회복의 실마리도 이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의 성장패턴, 대 고객 자세, 시장 인식 등에서 기다리는 공급자가 아닌 먼저 수요자에 다가서고 수요자에 앞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오히려 제시하는 적극적인 전략으로 동반성장의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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