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하비에르 마리아스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512쪽
현대인의 존재론적 불안을 예리하게 그려내는 작가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소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남미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로물로 가예고스 상` 수상작으로 탐정소설과 철학 에세이라는 두 장르의 기법에 바탕을 두고 구성된 소설이다. 사랑과 죽음에 관한 수많은 사색과 성찰을 비극적이면서도 코믹한 말투로 진지하면서도 가볍게 다루며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독자를 이끈다.
드라마 작가이자 대필 작가인 빅토르는 사랑을 나누기 직전 숨을 거둔 여인 마르타의 집에서 자신의 흔적을 지운 뒤 떠난다. 마르타의 가족은 그녀가 죽을 때 혼자가 아니었음을 눈치 채고, 그녀의 남편 데안은 그 밤에 마르타와 함께 있던 사람을 찾는다. 한 달 뒤 자신이 누구인지 숨긴 채 마르타의 가족에게 접근하고 마르타의 여동생 루이사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하는데….
스페인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세계 유명 문인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특유의 성찰적이고 시적인 문체로 현대인의 존재론적 불안을 예리하게 그려내는 작가다. 이른바 `형이상학적 스릴러`라는 마리에스 소설 특유의 성격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는 확실해 보이는 삶 너머에 있는 불확실성에 대한, 삶을 주관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불확정적인 것들로 가득 찬 인간 존재에 대한 관조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전한다.
사실 사색과 성찰이 포함돼 느리게 진행되는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고역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끄는 기발함으로 내면적 성찰에 중심을 두는 소설의 단조로움을 파괴하고, 이로 인해 독자가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우리의 삶과 존재에 대한 치열한 반성이라는 성찰적인 내용을 스릴러라는 형식으로 풀어낸 이 비범한 작품은 문학사의 한 장을 장식할 현대의 명작으로 남을 것이다.
인상적이면서 동시에 궁금증을 일으키는 제목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는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에서 인용한 문장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