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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으로 세상 보기

등록일 2014-02-13 02:01 게재일 2014-02-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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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소치에서 희소식이 날아왔다. 이상화 선수가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m 경주에서 금메달을 땄다. 나 또한 밤 늦게 집에 들어가 몇 번씩 리플레이 되는 경기 화면을 눈 크게 뜨고 지켜 보았다.

그녀는 당당했다. 어느 뉴스 기사는 그녀를 여제라고 칭하고 있었다. 정말 그랬다. 보는 사람들은 가슴을 졸였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전혀 떨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달리는 모습에서, 그 긴 스트로크에서 완벽하게 준비된, 그리하여 타고난 자신의 재능을 완전히 발화시켜 낸 사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당당함은 또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에게서도 발견된다. 나는 벤쿠버 올림픽이 끝나고 소치 올림픽이 오도록 그 4년 동안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면 김연아 선수가 벤쿠버에서 마지막 프리 연기를 펼칠 때의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곤 했다. 그녀는 지금 훨씬 더 강해졌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여왕이라고 부르지만, 그때는 더욱 순수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그 아름다움의 정수는 혼신의 연기를 마친 후 그녀가 흘린 눈물에 있었다. 나는 모든 연기를 마치고, 그리하여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완벽하게 감내한 끝에, 그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황홀한 슬픔과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장면을 앞으로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이상화나 김연아 같은 사람들의 존재는 현재의 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인생은 덧없고 그 덧없음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핑계거리, 명분 같은 것이 필요하다. 내가 하고 있는 문학이라는 것도 사실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빌미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중국 작가 위화가 말했다.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사는 것뿐이라고. 어떤 고통과 슬픔, 좌절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간해서는 그 삶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데, 그것은 사람이란 삶을 살아가라고 이 세상에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삶에는 더 아름답거나 덜 아름다운 삶들이 있다. 살아 존재하는 것은 나무 뿌리조차 모두 아름답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존재하기만 하는 것도 아름답지만, 더 아름다운 것은 역시 뜨겁게 무엇인가를 완성하려고 무서운 집념을 발휘하는 사람의 모습이요, 그 삶이다. 나는 이상화나 김연아의 오늘의 모습에서 오로지 자기를 완성하기 위해 절차탁마해온 위대한 인격을 발견한다. 그래서 오늘의 나 자신을 생각하며, 그들의 경기를 보고 또 보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제는 삶은 또 얼마나 다면적인 것이냐고 생각한다.

나는 문학을 합네 하고 육체라고는 등산 갈 때나 쓰고 숨쉬기를 운동인 줄 착각하며 살아가건만, 그네들은 육체의 완벽한 완성 끝에 고도의 경지에 선 정신의 자태를 드러내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대조적인 일들 말고도 세상에는 그야말로 수없이 많은 삶의 방식들이 있다. 다들 살아가려고 세상에 왔지만 그 삶의 형식들은 그 사람들의 수효만큼이나 많고 이질적이다. 그중에 공통적인 것을 우리는 정치다, 경제다, 하고 부르지만, 세상에는 이렇게 일반화할 수 없는 삶의 형식도 무수히 많다.

이상화나 김연아는 이 삶의 무한한 다양성에 눈뜨게 한다. 그리고 그 다양한 것들의 가치의 동등성에 눈 열리게 한다. 올림픽은 우리가 어떤 것 때문에 슬퍼할 때도 다른 어떤 것 때문에 기뻐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정치도, 경제도 어려운데, 우리는 지난밤에 정녕 기뻐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가.

나는 과연 다른 사람들이 나로 하여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일하고 있는지, 정말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종사하고 있는 일의 종류가 아니다. 그 일을 해나가는 내 진심 어린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내가 내 일에 정말 그렇게 매달릴 때 세상은 그 나의 존재로 하여 조금은 더 기쁜 곳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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