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보피, 트로이카, 바실리 사원의 양파머리 지붕, 표트르 대제, 나타사의 첫 무도회와 제국의 영광, 혁명과 아방가르드 예술, 신인류의 꿈”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고, 고대부터 현대까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러시안 오디세이-소치 올림픽 개막식`을 보며 떠오르는 핵심 이미지를 정리해 보았다. 러시아어로 `사랑(любовь)`을 뜻하는 `류보피`란 이름을 가진 소녀가 연에 매달린 채 하늘로 날아올라 `시간여행`을 하면서 러시아의 대자연, 민속, 문학, 음악, 발레, 미술을 보고, 듣고, 느끼게끔 시청자를 이끈다. 우선 `죽은 혼`에서 탈주한 트로이카(삼두마차)가 태양을 끌고 와 봄을 부르면서 `러시아의 부활`을 상징하는 공연들로 연결되는 게 인상적이다. 러시아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러시아정교의 상징물인 양파머리 지붕들이 고래의 몸체를 이루다가 마침내 바실리 사원으로 완성되는 것은 그들의 정신문화의 근간 형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양파머리 지붕은 불타는 촛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성령의 불꽃`을 상징한다. 한편 `러시아 근대화의 아버지-표트르 대제`와 그의 북방함대의 활약상을 디오라마 기법으로 보여주며 네바 강변에 서있는 그의 청동기마상으로 `강한 러시아`를 각인시키는 방식도 훌륭하다. 그리고 표트르 대제가 터를 닦은 제국의 영광과 러시아인의 승리를 묘사한 `전쟁과 평화`에서 나타샤의 첫 무도회 장면도 무용과 발레로 잘 표현됐다. 또 러시아 혁명기의 아방가르드 예술사조인 구성주의와 절대주의 작품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 형상화한 `신인류`의 활기찬 일상을 포스터처럼 보여주기도 한다.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모티프로 한 `평화의 비둘기`공연으로 개막식은 절정으로 치달으며 `류보피의 대장정-러시아의 꿈`이라는 주제의 개막식도 서서히 대단원으로 향한다.
강한 러시아, 새롭게 부활한 러시아의 꿈을 표현한 `소치 올림픽 개막식`을 보며 `평창 올림픽 개막식`을 그려 본다. 한 소년으로 하여금 대한민국의 역사를 여행하게끔 하면서 먼저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를 보여준다. 그 다음에 고난을 이겨낸 한민족의 부활과 근대화·산업화를 이뤄낸 `한강의 기적`을 디오라마 기법으로 표현한다. 마침내 통일을 이루어 유라시아를 누비는 우리의 미래상을 사물놀이와 함께 실감나게 표출한다. 그런데 우리는 미리 그려본 `평창 올림픽 개막식` 내용을 현실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사실 `소치 올림픽 개막식` 막후는 `외교 전쟁터`이다. 푸틴은 60개국 지도자들 중에서 시진핑을 가장 먼저 만났다. 왜 그랬을까?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의 `동아시아 회귀` 전략에 공동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었을 터이고, 자원외교라는 경제적 이해관계도 얽혀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중국으로선 일본과의 관계가 날로 악화되는 상황에서 러시아를 우군으로 만들 필요성도 제기됐던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소치 올림픽 개막식` 전후로 어떤 외교적 행보를 취하고 있나?
안타깝게도 소치 올림픽 개막식에 박 대통령은 참석도 하지 않았고,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만 참석했다.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국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이웃인 러시아의 소치 올림픽에 찾아가 기쁨을 나누는 것은 외교적 관례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일본의 아베 총리가 소치 올림픽 개막식 직후 푸틴과 정상회담을 하며 경제협력과 쿠릴 4개 섬 영유권 문제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 뛰었던 것만큼이나 `대한민국의 꿈-통일한국`을 위해 박 대통령도 그만큼 뛰었어야했다. 한반도 핵문제 해결과 동북아시아의 안전문제 강화를 위해 소치 올림픽에 참석해 중·러 정상들과 만났어야 했다. 중국은 미국의 영향력 하에 놓이는 통일한국을 염려해 일정한 역할을 하려고 할 것이고, 러시아는 남북관계와 한반도 상황을 당면한 문제로 인식해 `남북경제통합`을 자신의 극동지역 개발협력안과 결부시키며 일정한 역할을 하려고 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러시아-트로이카`를 대한민국으로 향하게 해 한반도 핵문제와 동북아시아의 안전문제를 해결해 나가야만 한다.`러시아-트로이카`의 마력으로 `남북경제통합`을 조성해 `러시아의 꿈`과 `대한민국의 꿈`의 공통분모가 커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