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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기사의 거친 표현들

등록일 2014-02-03 02:01 게재일 2014-02-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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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창원 청하중 교장

지난해 12월초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2013 골드스핀 오브 자그레브 피겨 스케이팅 대회를 앞두고 국내의 한 스포츠 신문은 “`피겨 끝판왕` 김연아 출격, 이제 일주일 앞으로”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를 보니 신문에서 왜 이런 거친 표현을 쓸까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끝판왕은 작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에서 마무리 전문 투수로 활약했던 오승환 선수에게서 유래한 용어다.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 9회에 등판하여 공 몇 개로 승리를 지켜내는 그에게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다. 같은 스포츠 스타라 해도 `피겨 여왕`인 김연아에겐 가당찮은 단어다.

`끝판왕`보다 더 큰 문제는 `출격`이라는 어휘다. 출격은 전쟁 용어로 자기 진지나 기지에서 적을 치러 나간다는 뜻이다. 김연아 선수가 국외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두고 전투기가 적기를 향해 날아간다는 의미를 가진 `출격`이란 용어로 표현해야 할까? 피겨 스케이팅은 상대 선수와 1:1로 맞대결을 벌이는 경기가 아니다. 선수가 자기 순서에 나와 스케이팅 기술을 선보이는 경기다. 출격이란 단어를 써야 할 만큼 과격하지도 않다. 음악에 맞춰 우아한 연기를 펼쳐 보이고, 그 능력을 평가 받는 경기다. 여기에 `출격`이라는 용어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거친 용어를 쓴 것은 결국 자극적 제목으로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올 초 연예계에는 `이승기와 윤아의 열애`소식이 사람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어느 연예인이 이성 교제를 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뉴스엔 으레 `열애`라는 단어가 따라 다닌다. 열애는 열렬히 사랑한다는 뜻이다. 연예인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한 달만 사귀어도 `열애`다. 언론에 보도되는 것만 보면 연예인들에게 평범한 연애는 있을 수 없다. 오직 `열애`만 존재한다. `연애`는 두 사람이 상대방을 서로 애틋하게 사랑하여 사귄다는 뜻으로 `열애`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사랑의 강도 면에서 연애보다 열애가 한 수 위라고 생각하여 연애 대신 열애로 적는 모양이다. `연애`보다 `열애`로 써야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테니까.

며칠 전 어느 인터넷 매체에 “김한길, `박근혜 대통령, 최악의 정치` 직격탄”이란 제목이 떴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기초단체 정당공천 폐지공약을 지키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이 최악의 정치를 하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는 기사의 제목을 그렇게 뽑은 것이다. 직격탄은 곧바로 날아와 목표물에 명중한 폭탄을 뜻한다. 야당 대표가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은 다반사요, 거친 수사가 난무하는 정치권의 특성상 이 정도 수위의 비난은 놀라울 것도 없다. 그런데도 `직격탄`이라는 살벌한 용어를 사용하여 독자를 긴장하게 만든다.

지난 주 인터넷에는 “백화점, 갑오년 첫 세일 돌입”이란 기사도 보였다. `돌입`은 세찬 기세로 갑자기 뛰어드는 것을 말한다. 백화점에서 하는 마케팅 행사에서 `돌입`이란 용어를 쓰려면 비상 상황에서 전에는 없던, 다른 곳에서 하지 않는 특별한 이벤트를 할 때라야 가능하다. 백화점에서 연례행사로 하는 판촉 행사임에도 `돌입`이란 거친 표현을 쓰고 있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언론사에서 내보내는 뉴스를 보면 이러한 사례 외에도 거칠고 자극적인 표현들은 넘쳐난다. 쓰레기대란, 물폭탄, 세금폭탄, 돌파, 격돌, 폭격, 전쟁터, 습격, 쓰레기…. 이를 보면 요즘 기사를 쓰는 기자들에겐 이런 거친 표현이 습관화되어 있는 듯하다. 다소 과장되고 자극적인 표현을 써야 독자나 시청자의 관심을 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언어는 그 사회의 품격을 나타낸다. 신문 기사나 뉴스에 실려 나가는 언어가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면, 언론에서 순화된 언어를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거친 언어는 거친 사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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