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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이해·사랑 일깨워줘”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4-01-10 02:01 게재일 2014-01-1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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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김숨 지음 창비 펴냄, 372쪽

대산문학상과 현대문학상을 거머쥐며 뛰어난 작품세계를 인정받고 있는 작가 김숨의 네번째 소설집 `국수`(창비)가 출간됐다. 현대문학상 수상작 `그 밤의 경숙`을 비롯 김숨의 탁월한 소설세계를 보여주는 9편의 작품을 실었다. 가족의 의미를 진중하고도 새롭게 천착하는 진정성과 더불어 현대인이 앓고 있는 분열적 심리에 대한 성찰과 묘사가 지적 각성과 동시에 깊고 풍부한 울림을 선사한다.

`국수`는 김숨이 3년 만에 펴내는 소설집이자 그의 열번째 저작이다. 그는 등단 7년 만에 첫 소설집 `투견`을 내놓은 후 누구보다 왕성한 창작열로 매해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다. 발표한 작품들은 호평을 받으며 굵직한 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됐고 지난 2013년 장편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로 대산문학상을, `그 밤의 경숙`으로 현대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데뷔 이래 사회의 이면에 짙게 드리운 그림자와 그런 사회에서 망가져가는 관계를 특유의 잔혹한 이미지와 환상적 기법으로 구현한 소설세계로 주목받았다. 또한 주제를 향해 나직하지만 집요하게 나아가는 문장은 그의 작품의 또다른 든든한 축이 되어주었다. 이런 김숨이 이번 소설집에서 더 깊이 집중하는 관계는 `가족`이다. 부부의 갈등과 균열을 사회적 층위와 연결 지어 긴장감 있게 그리고(`막차` `명당을 찾아서` `그 밤의 경숙`),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불편한 동거를 기묘한 분위기로 드러내며(`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증오만 남은 부자 관계를 극도의 공포에 휩싸인 집단 살육의 현장과 중첩시켜 표현하기도 한다(`구덩이`). 그중에서도 `국수`와 `옥천 가는 날`은 전통 서사에 기대어 모녀간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결을 함께한다. “삶의 영원한 화두에 대한 아름다운 천착이 돋보인다”(서영은)는 평을 받기도 한 표제작 `국수`는 외롭고 고단했을 계모의 삶을 이해하고 마음으로 화해를 이루는 주인공의 심리를 국수를 만드는 일련의 조리 과정에 탁월하게 버무려낸다. 리드미컬하게 문장에 문장을 더하며 촘촘한 서사의 밀도를 이루는 이 작품은 진정한 이해와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옥천 가는 날`의 두 자매는 응급차에 어머니의 주검을 싣고 장례가 치러질 어머니의 고향 옥천으로 향한다. 자매가 좁은 공간에서 주검을 어루만지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상황은 죽음과 삶이 이질감 없이 한데 섞이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자매가 회상하는 그들 가족의 드라마는 서로에게 짐이 되기도 하고 유일한 도피처가 되기도 하는 가족이란 관계의 심연을 들추어낸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에는 가족이라고는 혐오하는 개 한마리뿐인 한 노인이 등장한다. 극도의 한파가 들이닥치는 냉골에서 밤을 이겨내야 하는 노인은 부인이 살아생전 데리고 온 개와 함께 있다. 방에 온기를 내뿜는 것이라고는 그 개뿐이지만 노인은 개를 가까이하지 않겠노라 거듭 다짐한다. 그러나 결국 노인이 극심한 추위에 정신을 잃자 그를 살리려 사력을 다하고 온기를 나누어주려 이불 속으로 기어드는 건 바로 그 개다.

▲ 김숨 소설가

가족은 사랑으로 묶이기도 하지만, 증오로도 엮일 수도 있다는 걸 김숨은 간과하지 않는다. 같이 사는 시아버지와 함께 식사하는 것조차 끔찍해하면서도 시아버지가 남편이 날려버린 재산을 돌려달라고 할까봐 불안해하는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의 주인공이나 오랜 시간 함께한 남편에 대한 경멸과 멸시를 숨기지 않는 `막차`의 주인공, 하루가 멀다 하고 어머니와 이혼하라며 전화로 윽박지르는 아들을 둔 `구덩이`의 주인공은 모두 부조리한 관계 안에서 고통받는다.

이처럼 김숨은 자칫 진부할 수 있는 `가족`이라는 주제를 끊임없이 새롭게 보고 관계의 심연까지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진실과 마주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 노력은 그가 구사하는 단단한 문장과 독자들의 눈을 한순간도 놓아주지 않는 탄탄한 구성과 만나 진정성의 파장을 획득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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