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초 경남 거제에서 의미 있는 세미나가 있어 다녀왔다. 당일 출장으로 다녀오기에는 만만찮은 일정이었지만 평소 늘 관심을 가졌던 작가의 작품세계와 생애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으로 세미나가 진행된다고 하여 재미를 유발 시켰다. 경남 거제출신으로 한국 근대미술사에 있어 목가적 전원풍경으로 부산과 경남을 주요무대로 활동 한 서양화가 양달석에 관한 세미나였다.`양달석의 화업 인생과 작품 세계`라는 주제로 마련된 이번 세미나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전문 미술비평가나 미술사가에 의해 이루어진 세미나라고 말하기 보다는 미술을 좋아하고, 화가 양달석을 사랑하는 미술애호가가 만든 특강 형식이었기에 필자의 관심을 더욱 끌었다. 미술과 무관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가 보여준 세미나의 분위기는 진지함을 넘어서 작가에 대한 깊은 조사와 연구사에서 나오는 애정이 여과 없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서양화가 양달석의 호는 여산(黎山)으로 경상남도 거제도에서 한의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어려서 양친을 여의고 인척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며 불우한 소년기를 보냈다. 16세 때에 고학을 결심하고 통영의 사립청년학원을 거쳐 진주농업학교에 진학하여 그림에 뜻을 두게 되었다. 1932년에는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채화로 입선을 수상한 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제국미술학교에서 수학하며 어렵게 화가의 길을 개척했다. 그 사이 조선미술전 몇 차례 입선 수상과 일본의 여러 공모전에도 출품하기도 했다. 귀국 후 부산에 정착하여 작품생활에만 전념하며 전업화가의 길을 걸었다. 작풍은 자신의 외롭고 불우하였던 소년시절을 동심적으로 미화하려고 한 듯이 시골의 자연환경과 농촌생활의 서정을 동화처럼 정겹고 평화롭게 전개시키는 독특한 세계로 일관했다. `동심의 화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부산에서 기반을 다니며 활동을 이어갔지만 1984년 77세로 아쉬운 생을 마감했다.
이번 세미나 발제자로 나선 김의균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현재 대기업 계열사의 화학연구소에서 근무 중이다. 그가 양달석에 관한 깊은 연구가 이루어진 건 그 역시 고향이 거제로서 어린 시절부터 작가 양달석을 알고 있었다기보다는 미술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면서 동향의 작고화자 양달석을 알게 되며 작가를 연구하게 된 셈이다. 미술에 대한 관심과 수집을 좋아는 미술애호가들이나 콜렉터들은 작가론에 대한 강의를 듣거나 작품을 모으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그의 활동은 취미의 단계를 넘어서서 아마추어 비평가 활동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퍽이나 고무적이었다. 유족을 만나 그동안 미술사에서 재평가 되지 못한 화가에 대한 진진한 연구와 분석은 미술사를 전공한 필자에게도 적잖은 교훈을 안겨 주었다. 이제 사회적으로 경제수준이 고르게 향상되면서 일반인들이 예술에 대한 자세가 관자의 모습에서 참여자의 모습으로 변화해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자기가 좋아하는 예술가를 후원해주거나 작품이나 티켓을 구입해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주는 활동들은 이제 보편화 되었다. 예술가에 관심과 일반인들의 예술 활동 참여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사회도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숙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지역에서 활동하다 한국미술사에서 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역출신 예술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높은 미술애호가의 이러한 활동들이 지역예술을 더욱 살찌우게 하는 것 같다. 진정한 예술은 대다수의 일반인들의 관심과 사랑도 중요하지만 소외되고 저평가된 예술가에 대한 새로운 마니아들이 늘어나면서 예술세계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진다면 진정한 예술의 아름다움이 새롭게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