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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공부

등록일 2014-01-02 02:01 게재일 2014-01-0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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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서울에는 북한산이 있다. 그윽하고도 친절한 산이어서 사람들 누구나 즐겨 찾는 곳이다. 지난 토요일이다. 아침이 되자 나는 문득 그 산에 오르고 싶어졌다.

계란을 삶고, 귤을 두 개 넣고, 커피 전문점에서 원두커피를 사서 마호병에 담았다. 혼자서 가는 산은 그러고보니 몇 년만에 처음이다.

북한산은 입구가 많다. 어디서도 오를 수 있고 올라가서 여러 갈래를 치며 그전과 다른 출구로 옮겨갈 수 있다.

구기터널 앞에 이북5도청 가는 쪽에서 산을 타기 시작했다. 이 길이 내게 가장 익숙한 여정이다. 바로 며칠 전에도 큰 선배님과 함께 이 루트로 올라가 대남문 지나 대성문 지나 정릉 방면으로 내려 왔다.

왜 며칠 사이에 다시 산에 왔나. 내게 좀처럼 없던 일이다. 남에게 이끌려 산을 오를지언정 내 뜻으로 올라본 적 별로 없다.

그런데 뭔가 변하고 있다. 마음 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내 발로 혼자 산에 오르겠다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 것이다.

겨울 북한산은 눈이 얕게 깔렸다. 오래 전에 내린 눈이 녹을 데는 녹고 응달 진 곳, 패인 곳에는 쌓여 있고 녹은 것이 얼어 자못 미끄럽다. 하지만 아이젠 없이도 오를 만은 하다.

사람 몸은 참 간사해서 금방 숨이 차오른다. 어디를 얼마나 올랐다고 쉬어가자 한다. 한 중년의 사내가 저 앞에서 한 발 한 발 산길을 꼭꼭 눌러 밟듯이 걷고 있다. 저 이는 어디서 쉴 것 같지 않다. 그냥 저렇게 자기 갈 데까지 갈 것 같다.

산사람들이 올라가고 내려오고 나면 이야기 소리, 웃음 소리도 산나무 뒷편으로 사라지고 곧 산의 고요가 찾아든다.

나는 바위 위에 깔려 있는 눈을 본다. 나뭇잎을 다 벗어버린 나무들을 본다. 얼음 박힌 돌길을 본다. 산이다. 세상은 이 순간 내게서 조금 멀어져 있다.

갈림길이 나타난다. 한 쪽은 대남문 가는 방향이요, 다른 한 쪽은 승가사 가는 방향이다. 사람은 가끔 낯선 곳, 가지 않은 곳에 가고 싶다. 그러면 오늘은 승가사 쪽이다.

절로 올라가는 길은 조븟한 계곡길이다. 작은 시내를 따라 돌길을 밟아 올라간다. 바위가 먼 옛날에 두 동강이 나 서로로부터 떨어졌다. 그 사잇길을 통과해서 사람손을 타는 나뭇가지를 잡고 미끄러운 돌을 꾹꾹 천천히 밟으면서 위로 위로 올라간다.

이 길은 좁은 만큼 사람이 더 없다. 더 한가하고 더 고적하다. 오늘 이쪽으로는 사람이 많지 않다.

돌이켜 보면 숨가쁘게 달려왔다.

왜 그렇게 살았을까. 내게 주어졌던 시간들을 어느 구덩이에다 철푸덕 쏟아버린 것 같다. 이제 여유 있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많이 아껴 써야 할 것 같다. 붙잡아 놓을 수는 없으니까 조금씩 쓰는 방법을 고안해야 할 것 같다.

시냇물이 얼어 있다. 두껍게 언 곳도 얇게 언 곳도 있다. 물이 돌 사이로 흘러 떨어지는 곳은 얼지 않았다. 맑은 시냇물이 앙증맞은 파문을 만들며 흘러 내린다.

몸에 훈기가 돈다. 숨이 차오르는 때를 지나 바야흐로 내 몸은 세컨드 윈드다. 평화로운 고원이다. 힘든 등성이 지나 저 곳이 멀지 않았다. 장갑을 벗어본다. 싸늘한 산 공기가 손에 와 닿는 감촉이 새롭다. 손으로 휘저으면 거머쥘 수도 있을 것 같다. 깨끗한 산공기가 머릿속으로 스며든다. 만성 두통을 이 순간 잠시 잊어버렸다.

적당한 바위를 골라 걸터 앉아 본다. 오래 걸은 끝의 휴식이 달디달다.

이제는 산에 오르며 살아야겠다. 그리고 올라가면 내려가야겠다. 세상은 잊혀지기도 해야겠고, 내가 나만을 응시하기도 해야겠다. 새해가 되면 새 나를 낳고, 그리고 그 나조차 잊기도 해야겠다. 산 공부다. 산 마음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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