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대와 설렘으로 시작했을 계사(癸巳)년을 역사 속으로 보내야할 날이다. 아쉬움보다 만족함이 더 크길 바라며 모두 연초에 계획한 바를 잘 마무리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비상하는 말고삐를 바투 잡고 갑오(甲午)년 삶의 현장을 성공적으로 누비기를 기원한다.
마지막은 늘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누구나 삶의 끝자락에 서면 리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죽도록 미워했던 사람도 죽음 앞에선 용서와 화해를 한다. 용서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원, 또는 의지와 같은 말이다. 하지만 독할 대로 독해진 요즘 사회에서는 이 말도 빈 말인 듯하다. 남을 끝장내지 않으면 내가 끝장나는 시대다 보니 무조건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참 무서운 시대를 살고 있다. 타협이란 말은 이미 사전에서 없어진지 오래다. 그래서 “안녕들하십니까?”와 같은 말이 새삼 마음을 후벼 파는지도 모르겠다.
대학 교수들은 연말이 되면 `올해의 한자성어`를 발표한다. 한자성어를 보면 그 해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어 사회를 읽는 좋은 잣대가 되기도 한다. 2013년 한자성어는 `도행역시`(倒行逆施·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이다.“미래 지향적 가치를 주문하는 국민 열망을 읽지 못하고 과거 회귀적인 정부의 현 모습”을 말하기 위해서 선정했단다. 지난해의 한자를 보자. 2012년은 擧世皆濁 (거세개탁 - 온 세상이 탁해 모든 사람이 바르지 않다:올해 많은 사람들의 한숨과 고뇌가 모두로 하여금 넉넉함을 잃게 했다), 2011년은 `엄이도종`(掩耳盜鍾·귀를 막고 방울을 훔친다,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비판이나 쓴 소리가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다)
발표된 한자들만 보면 지난해 우리 사회는 참 그렇고 그런 사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데 좀 아쉬운 것은 대학 교수들의 시각이 한쪽으로 너무 치우쳤다는 것이다. 물론 역사가 힘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 쓰여 지고, 또 그걸 견제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나마 바른 방향을 찾는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한자성어들은 정부에 대한 너무 일방적인 비판인 듯해서 많이 아쉽다. 사회가 그렇게 되도록 사회의 지성이라고 하는 교수 집단은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내년 한자성어에는 교수 사회와 관련된 것도 꼭 같이 발표했으면 좋겠다.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필자가 바라는 2014년 한자성어는 바로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한자 그대로 직역하면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뜻이다. 논어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이 말은 공자와 자공의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자공이 공자에게 국가 경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고 공자는 세 가지를 답했다. 첫째 족식(足食·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둘째 족병(足兵·군대를 충분히 하고), 셋째 민신(民信·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라고 답했다. 또 자공이 만약 어쩔 수 없이 이들을 순서대로 포기해야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물었다. 공자는 첫째로 군대를, 다음으로 식량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자고로 모든 것들은 다 죽는다. 백성들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라고 했다고 한다.
국가 경영의 3대 조건은 식(食), 병(兵), 민(民)이고,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국민의 신뢰라고 한 공자의 말을 우리 모두가 귀담아 듣고 실천한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는 자연 해결 될 것이다. 그런데 답은 알지만 실천이 안되니 참 답답하다. 과연 우리의 신뢰 정도는 어느 정도일까. 정부와 국민의 신뢰도는? 여와 야의 신뢰도는? 국회와 국민의 신뢰도는? 국민과 국민의 신뢰도는? 참 답이 안 나오는 나라다. 아마도 2014년 올해의 한자는 `공도동망`(共倒同亡·넘어져도 같이 넘어지고 망해도 같이 망한다)이 되지 않을까. 그래도 국민 여러분, 새해엔 꼭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