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궁금해도 물어보지 말아야 할 것들

등록일 2013-12-30 02:01 게재일 2013-12-30 18면
스크랩버튼
▲ 박창원 수필가·청하중 교장

지난 크리스마스 저녁, 지인 부부를 어느 식당에 초대해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과거 20년 가까이 한 아파트, 같은 동에서 이웃사촌으로 지낸 친한 사이다. 양쪽 다 농촌 출신의 직장인이면서 나이도 비슷하고, 자녀도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어서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가족끼리 자주 어울렸고, 누구 집에 밥그릇이 몇 개이고,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됐다. 5년 전에 필자가 직장 관계로 농촌으로 이사를 하고, 뒤이어 이 가족도 시내에 신축 아파트를 분양 받아 집을 옮기면서 자주 볼 수 없게 됐다. 사흘이 멀다고 만나던 사이가 일 년에 두어 번 보는 사이가 됐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이웃사촌이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마음에 소주잔을 앞에 놓고 `하하 호호`하면서 두어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돌아오면서 생각해 보니 다 좋았지만 아쉬운 게 한 가지 있었다. 우리 집 막내가 지금 대학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고, 2월에 졸업을 한다. 그 집 아들도 필시 대학 졸업반일 텐데, 어디 취업을 했는지 물어 보지 못했다. 그들도 우리 부부에게 아들 취업 얘긴 일절 꺼내지 않았다. 서로가 눈치를 보면서 말을 아끼고 말았다.

얼마 전에 누구한테 들은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민생법안을 잘 돌보지 않는 우리 국회에서 모처럼 법안을 하나 통과시켰는데 이른바 `국민 프라이버시 보호에 관한 법률`이란다. 국민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궁금해도 물어보지 말아야 할 것들과 이를 위반할 경우 부과하는 처벌 내용을 규정한 법률이란다.

이 법의 제1조는 고3 수험생을 둔 부모에게 수능시험 직후 자녀가 시험을 잘 치렀는지 물어서는 안되며,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2조는 대학에 들어가는 자녀가 있는 부모에게 자식이 어느 대학에 합격했는지를 물으면 안되며, 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3조는 대학 졸업반 자녀가 있는 부모에게 자식이 어디에 취업했는지 물어서는 안 되며, 이를 위반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4조는 결혼한 자녀가 있는 부모에게 자식이 별 탈 없이 잘 사는지 물으면 안되며, 이를 위반 경우 무기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으로 돼 있단다.

요즘 세태를 아주 예리하게 풍자한 유머다. 대학 입시와 관련된 1, 2조는 우리 사회에서 대학입시가 차지하는 비중과 함께 대입 수험생을 둔 부모의 심적 부담을 단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3조는 어렵게 대학을 나와도 직장 구하기가 어려운 지금의 청년취업난과 그런 자녀를 둔 부모의 답답한 심정을 표현한 말이다. 4조는 최근 세계 3위까지 치고 올라온 한국 사회의 높은 이혼율과 자녀의 이혼으로 부모가 떠안게 되는 부담을 드러낸 표현이다. 이 법대로라면 그 날 누군가가“너거 아들 이번에 어디 취업했어?”하고 물었다가는 징역 10년형을 받을 수도 있었으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친한 사이라는 게 뭘까? 자주 만나는 사이이기도 하지만, 좋은 일에 대해서는 축하해 주고 좋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위로해 주며, 고민도 털어 놓고 서로 조언해 주는 사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진짜 궁금한 그 얘긴 한 마디도 못했다. 서로가 의식적으로 외면했다.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 혹시라도 아들의 취업에 실패했을지도 모를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수 있고, `프라이버시`가 손상될 수 있다. 졸업이 다가오는데….

가까운 사람끼리는 묻고, 축하해 주고, 걱정해 주고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인간관계일 텐데, 모두가 소통을 외치는 21세기에 들어와 무슨 신앙처럼 금기가 돼 버린 일련의 사회 현상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필자뿐일까? 이렇게 된 데에는 얘기해 봤자 이 문제에 관한 한 누구도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아침산책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