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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클로즈업 시대

등록일 2013-12-26 02:01 게재일 2013-12-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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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지난 토요일에는 작은 송년회가 있었다. 학교 선생 세 사람과 신문사 논설위원 한 사람, 그리고 여성 시인 한 사람이 어느 복집에 모여 앉은 것이다. 오래 친분을 쌓아온 사람끼리 그냥 `번개`를 하다시피 만난 것이었다.

복어 요리는 코스였고, 오래된 집이라서 맛도 아주 좋았다. 우리는 막걸리와 청주를 마시며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화제 삼았다. 자리가 좋았으므로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며 좋은 밤을 보냈다.

올해는 시대도 몹시 가팔랐다. 급한 여울목을 여럿 돌고 돌아가는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필자는 필자 나름대로 인생의 중요한 시간들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3월에 논문을 의무로 써야 하는 입장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논문, 비평, 번역, 소설을 포함해 줄잡아 5천매를 썼다. 숨가쁜 나날이었다. 그러고 난 다음날 아침이다. 늦게 일어나 염상섭 장편소설을 펼치다 말고 텔레비전을 켰다. 밤새 세상이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편안하지 않다. 바야흐로 텔레비전의 모든 뉴스 전문 채널들이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빌딩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중계하고 있다. 뉴스Y도, MBN도, YTN도, 그 밖의 채널도 경향신문사 현관에 중계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다. 그러면서 각 채널마다 정치평론가들, 교수들, 연구원들, 언론사 기자들을 불러들여 테이블에 올려 앉혀 놓았다. 입장이 강한 몇몇 채널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철도파업을 진단하는 말을 하도록 했다. 메가폰 기능을 맡겨놓은 것이다.

서울 정동이라면 필자가 살고 있는 곳에서 택시로 십오 분 거리다. 경향신문사에는 필자도 알고 있는 문학 담당 기자도 일하고 있고, 거기서 버스로 몇 정거장만 가면 광화문 교보문고가 나온다. 경향신문사 빌딩에서 시작되는 정동길은 이문세 노래 `광화문 연가`에 나오는 덕수궁 돌담길로 이어진다. 정동극장 같은 문화 기관, 단체들이 들어선 곳, 서울에서 가장 운치 있는 거리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그 곳이 경찰병력 5천명, 민주노총원과 시민 600명이 모여서 발 디딜 틈이 없다. 텔레비전 속에서는 지금 금방 경향신문사 현관 유리문이 중부소방서 소방관들에 의해 깨져 내렸다. 현장을 중계하는 카메라들이 일제히 부서지는 문을 클로즈업한다. 방송사에서 뉴스를 진행하던 여성 앵커가 놀람이 섞인 목소리로 문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을 알린다.

경찰병력 네 명이 노조원 사지를 하나씩 떠메 들고 나가는 가운데 나머지 현관문을 열고 막으려는 몸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열린 문으로 들어간 경찰병력과 노조원들이 서로 밀고 밀리는 통에 현관 유리문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터져 나올 것 같다. 아나운서는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린다고 전한다.

이제 현관문이 다 열렸다. 경찰병력들이 “천천히”를 외치는 가운데 건물 안쪽으로 꾸역꾸역 밀고 들어간다.

나는 오늘이 며칠이지? 하고 생각해 본다. 12월 하고도 22일이다. 올 한 해가 열흘도 남지 않은 시간이다.

카메라들은 오늘 한국 방송사상 전례 없는 현장 중계를 하고 있다. 화면 가득 사람들의 치열한 움직임이 잡히고 외치는 소리, 명령소리,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바야흐로 클로즈업 시대다. 경찰병력과 노조원들의 밀고 밀리는 현장을 이토록 길게, 이토록 가까이서 보여준 적이 있던가. `롱 테이크`의 클로즈 업 시대다. 하지만 아무리 클로즈 업 해도 진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한 종편 채널이 메가폰들을 동원해 열심히 분석, 평가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은 아니다. 북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숙청이 한창인데, 여기서는 지금 무슨 일이 전개되고 있는 것일까. 막 경향신문사 기자에게 답신이 왔다.

“오늘 마침 휴무인데 가봐야 할 듯합니다. 주말에 들어올 거라 예상은 했지만 참 힘든 시대 맞습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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