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24일, S포항 병원 준중환자실에는 사랑과 희망이 가득한 캐럴이 울려 퍼졌다. 기계에서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캐럴이 아닌 체온보다 더 따뜻한 목소리로 학생들이 부르는 캐럴은 장기 투병 중인 중증환자들은 물론 간병인들의 병원 피로감을 말끔히 씻어 주었다. 천사의 소리가 있다면 그 소리는 분명 아이들이 부르는 캐럴 소리일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작년 5월11일 금요일.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김기현 학생이 등교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머리를 몹시 심하게 다쳐 큰 뇌수술만 수차례 받았다. 처음에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건 다름 아닌 학생들이었다. 요즘 학생들을 아우르는 말은 무개념이다. 사회는 학생들을 병자 취급한다. 전 지구상에서 이 나라밖에 없다는 중2병. 교실·학교 붕괴에 이어 이제 학교는 사회 4대악의 생산지가 됐고 그 악의 주체는 또 학생들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캐럴을 들었다면 이것은 부풀리기를 잘하는 어른들과 떠벌리기를 잘하는 언론이 만들어 놓은 허구라는 것을 분명히 알 것이다.
중학교 3학년이라는 바쁜 시기에도 오천중 3학년 5반 학생들은 의식 불명의 친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아끼고 아껴 거의 매일 병문안을 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처럼 모두 어렵다고만 하던 김기현 학생은 친구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3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학생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완쾌를 위해 더 자주 병원을 찾아 공연을 열었다. 기적은 역시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다들 어렵다고만 했던 김기현 학생은 친구들의 응원 덕분에 더 빨리 회복 됐으며 2012년 12월24일 친구들과 희망의 캐롤을 같이 부를 수 있게 됐다. 이제 다시 그 희망의 날이다. 안타깝게도 아직 김기현 학생은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지만 부산으로 병원을 옮겨 열심히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그런 기현이를 응원하기 위해 친구들은 옆 동네 오가듯 한 달에 한 번은 꼭 부산을 오가고 있다. 희망은 분명 희망을 부르는 힘이 있다. 그 희망은 오작교가 돼 부산과 포항을 이어줬다. 오작교 위에서 서로에게 희망을 나누던 아이들은 힘들어 하는 이 사회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적의 크리스마스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헐벗은 세상에, 특히 멈춰선 선로에 학생들이 노래하는 평화와 축복의 캐럴이 울려 퍼지길 간절히 기원한다.
세계화 시대에 광의의 개념으로 본다면 크리스마스도 이제 우리의 명절이다. 종교를 떠나 이 날이 갖는 의미를 되새기고자 하는 여러 행사들이 범국가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성탄의 기쁨이 이 사회의 모든 음지에 골고루 나눠지길, 그래서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더 이상 없기를, 아픔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단 한 사람도 없기를, 더 나아가서 뉴스가 사건 사고가 아닌 훈훈한 미담들로만 채워지길 기원한다.
국민을 아우르는 날이 된 크리스마스는 언제부터인가 젊은이들에겐 특히 연인들에겐 제일 큰 명절이 됐다. 학생들에게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묻다가 종교도 상업화의 바람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됐다. “케이크, 산타, 선물, 솔크(솔로 크리스마스), 그리고 크리스마스 데이(DAY)!” 요즘 밸런타인데이, 화이트 데이, 빼빼로 데이와 함께 젊은이들의 4대 명절 중 하나가 바로 크리스마스 데이란다. 비록 일부이겠지만 사랑과 평화, 배려와 희생이라는 이 날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 듯해서 또 이 날도 데이(DAY) 문화로 인식되는 듯해서 몹시 쓸쓸하다. 이해와 배려가 오해와 배타로 변질된 것은 아닌지, 가면 갈수록 종교시설은 초호화, 초대형화 되고 있는데 왜 세상은 더 살기 어려워만 지는지. 올 성탄절엔 화합과 사랑을 실천하는 뜻에서 종교인 스스로 출입구에 있는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바리케이드부터 철거하는 것은 어떨까? 여기서 문제, 교회·사찰 매매 사이트는 있다?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