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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년회(忘年會) 풍속도

등록일 2013-12-17 02:01 게재일 2013-12-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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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편집국장

망년회(忘年會)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봤다. `연말에 한 해를 보내며 그해의 온갖 괴로움을 잊자는 뜻으로 베푸는 모임`으로 나와 있다. 글자 그대로라면 한해 겪은 괴로움을 다 잊자며 갖는 모임이지만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안기곤 한 게 바로 망년회다.

망년회는 일본식 한자어 표현이라 지금은 송년회, 송년모임으로 고쳐 쓰지만 70~80년대는 신문에도 망년회라고 썼다. 12월은 망년회로 시작해 망년회로 진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망년회 문화는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다. 웬만한 직장인이라면 며칠 겹치기 출연도 불사해야 하고, 2차, 3차 술을 마시며 끝없이 돌다보면 결국 인사불성으로 이어져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숙취로 다음날 일을 망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주당들이 많은 신문사 망년회도 그리 만만치 않다. 그래서 나 역시 망년회 음주로 고생한 일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 주말 포항에서 잇따라 열린 신문사 망년회와 모기업 계열사 망년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지난 한해를 돌아보며 열심히 일한 사원들을 격려하고, 덕담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각오를 다지는 진지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특히 망년회 풍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건배사다. 어떤 모임에서든 누군가를 축하하고, 모임에 의미를 부여하고, 소속감을 높이는 건배사는 통과의례다. 백인백색의 기발하고 재밌는, 그리고 뜻깊은 건배사는 하나의 문화코드가 되고 있었다.

그래선지 연말 몇몇 모임에서 들었던 건배사들이 마음에 가만히 와닿았다. 대표적인 건배사는 오바마(오래오래 바라는 대로, 마음먹은대로), 변사또(변치말고 사랑하고 또 만나요), 당나귀(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하여), 나가자(나라와 가정과 자신의 발전을 위하여), 개나발(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진달래(진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사우나(사랑과 우정을 나누자) 등으로 알기쉽다. 좀 더 유식(?)한 건배사를 하고싶다면 외국어를 사용한다. 넌센스지만 영어로는 `원샷`이 대표적이고, 불어로는 `더불어`가 있다. 이밖에 외국어 건배사로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 현재를 즐기자는 뜻의 라틴어), 코이~노니아(Koinonia; 가진 것을 서로에게 아낌없이 나누며 죽을때까지 함께 하는 관계를 뜻하는 그리스어), 메아 쿨파(Mea Culpa; `내탓이요`라는 뜻의 라틴어), 하쿠나 마타타(`괜찮아 걱정하지마`라는 뜻의 아프리카 스와힐리어) 등이 뒤를 잇는다. 뜻깊고 멋있는 건배사도 있다. 구십구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틀만 아프고 삼일째 죽자는 `구구팔팔~이삼사`, 그리고 하루에 한가지 착한 일을 하고, 10번 이상은 웃고, 100자이상을 쓰고, 1천자 이상은 읽고, 1만보이상 걷자는 뜻으로 외치는 `일십백천만`, 당당하게 살고, 신나게 살고, 멋지게 살고, 져주며 살자는 뜻의 `당신멋져`등은 건배사의 백미라고 해야겠다.

이런 건배사와 함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망년회가 끝나면 어느덧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마련이다.

올해 망년회 풍속도는 흥청망청한 예전의 망년회와는 확연히 달라보인다. 연말이면 어김없이 발령되던 `망년회 주의보`가 무색할 지경이다. 실제로 지역에서는 단순한 망년회보다는 사회봉사활동으로 대체하거나 망년회 비용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는 기관 단체가 늘고 있다고 한다.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 송년회 모임이 느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

돌이켜보건대 망년회는 한해를 잊는 망년(忘年)이 되선 안된다. 오히려 한해를 곰곰 생각하는 `상년(想年)`, 지난 잘못을 회개하는 `회년(悔年)`, 한번 저지른 잘못은 다시 되풀이하지 말자고 명심하는 `명년(銘年)`, 묵은해에 쌓인 감정의 찌꺼기를 해소하는 `해년(解年)`의 장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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