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조선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러시아 등 북극 연안 국가에 쇄빙선을 건조해 주는 대신 북극항로 이용료를 감면받는 전략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국해양대 남청도 교수의 말이다. 그는 지난 9월16일 현대글로비스가 스웨덴 스테나 해운에서 빌린 내빙유조선 `스테나 폴라리스`호를 타고 러시아 우스트루가항을 출항해 35일간 1만5천km 북극항로 운항을 마치고 10월21일 광양항에 입항했다. 그가 탄 내빙유조선에는 여천NCC가 수입하는 나프타 4만4천t이 실려 있었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하게 되었을까? 자료를 찾아보니 북극해를 통과하는데 관할국가인 러시아에 지급하는 비용인 통행료가 비싸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러시아 등 북극 연안 국가에 쇄빙선을 건조해 주는 걸로 북극항로 이용료를 감면받자고 제안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또 다른 문제는 없을까? 북극항로를 운항할 때는 쇄빙선이 앞장서 북극해의 얼음을 깨면서 항로를 만들어야만 내빙선이 얼음이 떠 있는 바다를 헤치며 항해할 수가 있다. 그러나 내빙유조선 `스테나 폴라리스`호는 쇄빙선을 구하지 못해 사흘이나 북극해에 발이 묶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9년 2척, 물동량 2만4천t에 그쳤던 북극항로 이용선박이 지난 해 46척, 126만t, 올해는 71척, 135만t으로 급증했지만 북극항로 운항에 필수적인 러시아 쇄빙선은 5척에 불과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현대글로비스가 세를 내고 빌린 선박의 북극항로 시범운항 성공에 대해 해운업계 반응은 어떨까? 기상악화 등 위험요소가 많고 아직은 북극항로 이용기간이 연중 4~5개월에 불과하다면서 좀 더 지켜보자는 조심스런 입장이다. 그리고 현실적인 몇 가지 문제도 덧붙인다. 내빙선이나 쇄빙선 이용료 등을 모두 따져 봐야 하고, 무엇보다 제 날짜에 도착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는 북극항로를 화주(貨主)들이 선호하지 않아 운송화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한 마디로 북극항로의 상용화와 상업화까지는 넘어야 할 난제가 많고도 많다는 시각이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10일 관계부처와 함께`북극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북극정책 기본계획`은 △국제협력 8개 과제 △과학조사 연구 분야 11개 과제 △북극권 비즈니스분야 10개 과제 등 총 31개 정책으로 오는 2017년까지 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특히 북극권 비즈니스 분야에서는 북극항로를 경유해 국내항만에 입출항하는 선박과 화물 유치를 위해 항만시설사용료 감면과 함께 일정 물량 이상의 환적화물을 처리하면 하역 요금을 깎아주는 `볼륨 인센티브제`를 내년부터 시행하는 계획이 눈에 띤다. 그리고 북극항로 상에 위치한 러시아 주요 항만 개발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 체결과 북극항로 통과화물증가에 대비한 국내항만재정비계획수립도 눈에 들어온다.
해수부는 `해양 실크로드-북극항로`가 당장 사업성이 좀 떨어져도 5년 후, 10년 후를 내다보자는 입장일 것이다. 북극에 매장된 석유, 천연가스, 수산어획량을 고려해 북극 해상 수송권 확보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한편 해운업계는 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조치를 바란다. `해양 실크로드-북극항로`에 대한 정확한 경제성 평가와 그에 따른 대책 마련으로 북극항로의 리스크를 낮춘 후, 상업적 운항을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양한 차원에서 러시아 정부의 적극적 협조도 받을 수 있게 해주길 원한다. 해수부와 해운업계가 머릴 맞대면 접점을 찾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궁금한 게 한 가지 있다. 우리나라의 조선기술로 내빙선이나 쇄빙선을 건조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인데, 왜 제2쇄빙연구선 건조만 검토하고 있는지, 정부는 712억원 이상 들어가는 쇄빙선 제작 재원조달 문제 때문에 직접 건조할 수 없는 것인지, 쇄빙선과 내빙선을 직접 건조해 소유해야 북극항로 상용화와 상업화를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정부는 러시아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해 동시베리아 지역의 에너지 및 광물자원의 해상수송을 추진해 나가면서 `해양 실크로드-북극항로`의 상업적 운항을 단계적으로 시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북극항로를 운항할 수 있는`아이스 파일럿`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교육기관도 설립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