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이 저물면서 각급 학교의 졸업식이 다가오고 있다. 많은 내빈과 학부모가 참석하는 졸업식은 학교의 가장 큰 행사에 속한다. 으레 지역의 각 기관·단체장들이 참석하여 축하를 해 주고, 졸업생들은 학교장으로부터 개근상과 우등상을, 지역의 기관·단체장으로부터 다양한 표창장을 받는다.
표창을 하는 기관장 중에는 국회의원도 들어 있다. 행사에 일일이 참석은 못하더라도 상은 꼭 보내오는 게 관례이다. 1991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도의원과 기초의원을 비롯한 선출직 공직자들이 너도 나도 상을 주겠다며 학교에 수상자 추천을 의뢰한다. 자기 학교 졸업생에게 상을 주겠다는데 마다할 학교가 어디 있으며, 자기 자녀가 상을 받는데 사양할 학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졸업식 때 상의 수가 급증했고, 시장·군수상, 국회의원상, 도의원상, 시의원상 시상도 관례가 됐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문제가 생겼다. 정부가 공직자 선거법을 개정하면서 선출직 공직자들은 상장은 줄 수 있어도 상품은 일절 줄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상품을 주는 것은 사전 선거 운동에 해당된다. 어쩔 수 없이 학교에 이들 공직자가 주는 상은 상품 없이 상장만 배달되어 온다. 국회의원상, 시장·군수상, 도의원상, 시의원상 등이 상품 없이 상장만 수여되는 사태가 생겼다.
졸업식 때 수여되는 상은 푸짐한 상품이 곁들여지는 게 상식이요, 그게 졸업식의 풍경이기도 했다. 전에는 이 상들이 시가 5만원쯤 하는 사전류가 부상으로 나갔는데, 상품이 없어져 버렸으니 상을 전해 주는 학교나 상을 받는 학생이 떨떠름해한다. 시상자의 사회적 지위로 보면 최고의 상이지만 상품 없이 전달하다 보니 초라한 상이 되고 말았다. 이 상들보다 격이 좀 낮다 할 수 있는 상들도 화려하게 포장된 상품을 붙여 주는데, 이 상들은 달랑 `종이 한 장`만 전해 주려니 학교로서도 난감한 상황이 생겼다.
국회의원이나 시장·군수, 도의원이 졸업식에 참석하는 일은 거의 없다. 누군가가 대신 전달해야 한다. 시장·군수상은 보통 면장이 대신 전한다. 하지만 국회의원이나 도의원은 대리로 수여할 만한 마땅한 인사가 없다. 그때 그때 형편을 보아 누구에게 부탁하지만 여의치 않으면 교장이 전하기도 한다.
상을 부상의 가치로만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공부를 잘하거나 모범적인 학교생활의 대가로 국회의원상을 받는 어린 학생은 자기보다 못한 친구가 받는 기관·단체상 상품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의원님의 상은 선거법상 상품을 수여하지 못하도록 돼 있어 부득이 상장만 전달하니 양해해 달라는 진행자의 말이 궁색해 보인다. 상장만 주기가 곤란해 학교에서 상품을 구입하여 주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외부 기관·단체장 시상에 학교 예산을 쓰는 게 이치에 맞지 않을 뿐더러 자칫 시상자가 주는 걸로 오해할 수도 있기에 권장할 게 못 된다.
다행히 최근 지역의 일부 도의원, 시의원들이 상품 없는 시상의 문제점을 인식하고서는 시상을 포기하게 됐다. 잘한 일이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아직 이 문제에 대해 별 생각이 없는지 여전히 상장만 보내오고 있다. 포항시 북구 지역의 경우엔 2012학년도까지만 해도 북구 출신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인근 남구 지역 국회의원까지 상장을 보내왔다. 자기 선거구가 아닌 남의 선거구에 속한 학교 졸업생에게 상을 주는 이유에 대해 의아해 하는 학부모들이 많다.
정치인이 선거구 내 학교 학생들에게 시상을 하는 건 다분히 표를 의식한 정치 행위로 봐야 한다. 그러나 영광스런 졸업식에서 상품도 하나 없고, 대신 전달할 사람도 마땅치 않아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부탁하여 상장을 전하는 행위가 이치에 맞는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