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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은 있다? 없다?

등록일 2013-12-03 02:01 게재일 2013-12-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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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 시인·오천중 교사

수능이 끝나고 시험이 좀 잠잠 하려나 했는데 또 시험 시즌이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기말고사를 준비해야 하고 또 이들의 선생님이 될 예비 교사들은 임용고사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취업을 위한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모든 시험의 공통점은 바로 점수로만 승부를 하는 경쟁시험이라는 것과 점수에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것과 과정은 없고 결과만 있는 시험이라는 것이다. 사회는 이미 지식경제사회로 넘어간 지 오래인데 시험은 아직 농산업사회의 역군을 뽑고 있으니 걱정은 걱정이다.

우리나라에는 학생들이 없으면 안 되는 업체들이 꽤 많다. 학원, 출판사, 의류, 여행, 휴게소, 그리고 독서실 등…. 이 중에 요맘때 시험 특수를 톡톡히 보는 곳이 바로 독서실이다. 수능 수험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기말고사 수험생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물론 임용고사 등 각종 취업 준비생들은 1년 전부터, 아니 어떤 이는 몇 년 전부터 둥지를 틀었다. 등대처럼 환히 불 밝힌 독서실과 도서실을 보면 이 나라 미래도 참 환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아쉽다.

벼락치기, 아마 다들 경험 해봤을 것이다. 효과가 있다는 사람도 있지만 글쎄다. 잠시 외웠다가 마킹만 끝나면 벼락처럼 휘발성 강하게 흔적도 없이 날아 가버리는 지식들. 그런 지식들의 흔적을 숫자화한 성적을 과연 학생들의 실력이라 할 수 있을까. 12년 간 국어를 공부했지만 `밤`은 `일제강점기`라는 것밖에 남아 있지 않는 아이들에게 과연 창의성, 문화 감수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아이러니 한 건 중고등학생 옆 자리에서 열심히 임용고사 공부를 하는 예비 교사들도 암기에 바쁘다는 것이다. 초·중·고 학생들이든, 예비 교사든, 아니면 고시든, 입사 시험이든 이 나라 시험은 모두 암기력 테스트에 혈안이 되어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 한 번이면 나오는 지식들을 굳이 외워야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아, 아니다. 이유를 알 것 같다. 이유는 다들 예전부터 그렇게 공부해 왔고, 또 그것만이 공부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창의성, 종합적 사고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평가 방법 개발을 위해 모두들 노력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이론과 현실의 갭은 너무도 크다. 책과 제도, 규칙과 숫자 놀음에 빠져 있는 이 나라 시험 정서와 창의성 문제는 낯설어도 너무 낯설다.

독서실 못지않게 기말고사 특수를 누리는 곳이 또 한 곳 있다. 바로 독서실 앞 편의점. 편의점의 컵라면과 삼각 김밥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온수기는 채워지는 순간 비워진다. 학생들은 미지근한 물도 마다하지 않고 늦은 시간 편의점에서 삼삼오오 모여 컵라면을 먹으며 즐거워한다. 밤참을 먹은 아이들은 또 하루살이처럼 독서실 불빛을 향해 날아간다. 학생들에게 자주 꿈에 대해서 묻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학생들이 얼버무리거나 입을 닫아버린다. 그래도 몇몇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다. 바리스타, 파티쉐, 뮤지컬 연출가 등. 그 꿈에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짐작한다. 그리고 일부 학생들은 감사하게도 교사가 꿈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들은 어른 말을 아주 충실히 잘 듣는 모범생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교사가 되고 싶은 이유를 알면 감사의 마음이 싹 가신다. 편하니까, 또는 어머니께서라고 말을 흐리는 그들에게 나는 꼭 말한다. 너희는 절대 교사가 되지 말라고. 점수와 벼락치기에 길들여진 모범생들이 교사가 되면, 그들은 또 배운 대로 착실히 암기 위주의 시험 문제로 우리 아이들의 창의성을 죽일 것이고, 또 그들에게 배운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또 똑같이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여기서 문제 하나. “공(空)교육에서 청출어람(靑出於藍)은 있다? 없다?” 답은? 답을 알면 창조 경제? 창조 한국? 문화강대국? 이라는 말이 얼마나 낯선지 알 것이다. 그래도 벼락치기라도 하는 모든 수험생들에게 꼭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인생의 양식은 책이 아니라 모험이라는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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