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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 IT 강국에 드리운 우울한 그늘

등록일 2013-12-02 02:01 게재일 2013-12-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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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창원 수필가·청하중 교장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IT 강국이다. IT 강국답게 요즘은 뉴스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같은 온라인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온라인 뉴스가 가진 가장 큰 힘은 실시간으로 정보가 제공된다는 점이다. 또 뉴스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을 읽을 수 있고,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알릴 수 있는 쌍방향성을 갖고 있다는 점도 방송이나 신문이 갖지 못한 장점이다.

며칠 전 온라인을 달군 톱뉴스는 한국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었다. 201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자살에 의한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33.3명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단연 많았고, OECD 평균(12.4명)과 비교하면 3배 가까운 수치여서 우리 모두를 슬프게 했다.

인터넷으로 이 기사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누리꾼들의 반응에도 눈이 갔다. 참으로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이 올려놓은 댓글들을 보면 어떻게 저런 생각까지 할까 싶다. 그러면서 자살률 1위라는 소식보다 악성 댓글에 더 우울해진다.

“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좋다는데, 남겨진 이에게 슬픔 주지 말고 힘들어도 삽시다” 이런 긍정의 언어를 댓글로 다는 이는 1%도 안 된다. “1등이라니! 자랑스럽다”며 반어법으로 풍자하고 있는 이는 그래도 점잖은 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문제를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해석하고선, 정치성 댓글로 사회에 대한 불만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러다 보면 경쟁하듯 저질스런 수사로 도배되고 만다. “역시 닭이 잘하고 있군. 좋은 일자리를 못 늘리니, 사람 수를 줄여 좋은 일자리가 필요 없게 만드는군. 대단해” 하면서 현 대통령을 비난하니까 그 반대편 사람이 “국민에게 모범이 돼야 할 ×이 쪽팔려 뒈지고부터 자살이 급증했다. 자고로 지도자는 잘 뽑아야 된다” 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직 대통령을 비꼰다. 또 “쪽 팔리니까 OECD인지 뭔지 탈퇴해라. ×누리가 6년간 치른 성적표다”하며 새누리당을 공격하니까 또 어떤 이는 “보자. 민주당 정권 10년 동안은 1위 안 했냐? 좌음들”하면서 민주당을 나무란다.

우리 사회는 2000년대부터 보수와 진보로 나뉜 가운데 첨예한 이념 대립을 보이고 있는데, 그 중심에 인터넷이 있다. 인터넷은 가장 넓으면서도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이기도 하거니와 거기서 누가 무슨 소릴 해도 크게 문제 될 게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공간에서는 어떤 불만을 가진 사람이 그 상대를 향해 독화살을 쏘아대도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인터넷 뉴스를 읽다 보면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이런 투의 댓글만 다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의 글일수록 문제에 대한 진정성이란 손톱만큼도 없다.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임에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원색적인 비방을 퍼붓고 선동을 일삼는다. 아마도 그럼으로써 무슨 의인이라도 된 양 착각하고, 잠시나마 카타르시스를 얻는 모양이다.

개인이 올리는 이런 식의 `악플`도 문제지만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특정 세력이 댓글을 이용하여 여론을 조작하거나 왜곡하려 든다는 점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원 댓글 사건도 우리 사회에서 특정 세력이 정치적 문제를 자기편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하려는 시도의 일례에 해당한다.

문제는 악플을 규제할 마땅한 방도가 없다는 데 있다. 몇 년 전 정부에서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려고 했지만 위헌 판정을 받는 바람에 추진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누리꾼의 의식 수준을 끌어올려 스스로 악플을 달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방송에서 비뚤어진 댓글 문화를 바로 세우기 위한 공익광고도 내보내고 있고, `선플` 달기 운동을 벌이는 단체도 있으며,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정보통신윤리교육을 실시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IT 강국에 드리운 우울한 그늘을 걷어내기엔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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