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식별구역(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ADIZ) 문제의 중요성을 중국과 일본의 `고양이와 쥐` 게임 정도로 한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아시아 전문가팀의 말이다. CSIS는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가 중국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를 기점으로 덩샤오핑이 역설한 `도광양회(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조용히 힘을 키운다)`정책에서 벗어나 새로운 외교 전략을 표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미국을 향해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영토 문제 등 핵심이익을 존중하자는 `신형 대국관계`를 제안해 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아시아로 중심축이동(한·미·일 삼각동맹 공고화로 중국의 부상 견제)`과 일본의 `적극적 평화주의(집단적 자위권 행사, 국가 안보회의 구성)`로 대변되는 미·일의 움직임이 이와 상충된다고 판단하고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다. 이 방공식별구역에서 중·일 중첩부분엔 센카쿠 열도와 이어도가 포함되고, 한·중 중첩부분엔 제주도 서쪽 상공 폭 20km, 길이 115km 면적이 포함된다.
중국은 `도광양회`에서 벗어나 `대국굴기(큰 나라가 일어선다)`로 전환하고 있는데 좀 더 깊이 그 이면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자. 아베1기 내각(2006~2007년)에서는 `자유와 번영의 호(弧)` 구축을 공식화했다. 이 호(弧)는 미국-일본-호주-필리핀-인도를 잇는 큰 활모양의 선으로 중국을 압박·봉쇄한다는 전략적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당시 총리는 아베 신조 현 총리였다. 2차 아베 내각이 들어서자 이 전략이 다시 공식화되었다. 한편 중국은 냉전시절 미국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설정한 제1열도선(규슈-오키나와-대만을 잇는 가상의 선)을 돌파해 해양대국 건설을 위해 설정하고 있는 공격적 열도선인 제2열도선(일본 남쪽 이즈제도-사이판-괌-인도네시아)까지 진출하고자 한다. 그런데 문제는 제1열도선과 `자유와 번영의 호(弧)`가 충돌하는 지점이 곳곳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동북아 신패권 경쟁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으며 또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하는 문제로 시선을 돌려 보자.
중국은 방공식별구역을 재조정하자는 우리 정부의 제안을 일축해버렸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우리도 방공식별구역 확대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보라”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방공식별구역에 최소한 이어도 상공을 포함하는 방안이 내부적으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향후 중국과 배타적 경제수역(EEZ) 협상의 교두보 마련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중·일의 대응과 우리의 공군력 취약을 염려하는 시각도 있다. 한편 우리 정부는 11월29일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블록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 동안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중국 주도의 아·태지역경제 통합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던 데에서 벗어나 미·중 양국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것을 두고 정부가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지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해석하면 좀 성급한 것일까?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가 미국 주도의 경제블록으로 무게 추를 옮기는 게 중국에게는 어떤 의미로 해석될까?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대한민국호가 사안 별로 우리의 목소릴 내는 실리외교를 하고 있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
동북아 신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불확실성의 게임과 마주한 대한민국호는 우선 내부적으로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대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치권도 초당적으로 협력해 생산적 담론을 만들어내야 한다. 도대체 사회적 갈등으로 얼마나 많은 비용을 국민이 부담해야만 하는가? 중국이 서해상과 남중국해까지 방공식별구역을 확장하려는 냉엄한 국제현실을 앞에 두고 정부의 치밀한 전략과 신중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어도를 생각하면 이제 제주해군기지도 완공해야 하지 않을까?
멀리 보면 남북갈등까지 해소해 남북경제협력으로 부국강병을 완성해내는 길만이 우리가 살 길이다. 우리에게 영구안전세력은 없다. 한·중 협력도 한·미·일 삼각동맹도 국익 앞에선 무기력하다. 우리 스스로 힘을 키워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역사의 치욕을 되풀이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