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아, 이제 더 이상 욕되게 살지 마라. 미선이와 효순이가 아직도 어둠 속에서 울고 있는데 너는 여기저기 잘도 붙어사는구나. 네가 물들인 사람이 얼마인데 너를 등대삼아 이 척박한 땅,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그래도 너를 보며 살았던, 살고 있는, 살고자 하는 사람이 얼마인데, 그 사람들의 희망을 너는 저버렸단 말이냐. 촛불아, 제발 더 이상 욕되지 않게 하루 빨리 그 더러운 불을 끄려무나.
촛불아, 네가 밝히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아니 너를 든 저 사람들이 밝히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어둠 속에 지나온 시간들이냐, 아니면 어둠을 견뎌내고 다가올 시간이냐. 정말 저들이 집요하게 밝히려는 게 뭐란 말이냐, 그래서 얻고자 하는 게 도대체 뭐란 말이냐, 자리에 대한 욕심이라면 그 오욕(汚辱)의 자리 줘버리면 될 터. 왜 지나온 것에 대해 집착 하는, 형식과 가식에 갇혀 눈치만 보고 사는 무리들에 너는 영합하느냐. 지조도, 줏대도 없이 아무 손에 들려 환히 웃으며 춤을 추는 너를 미선이, 효순이가 본다면 아마 자신들을 욕되게 한 너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피해 의식으로 가득 찬 불쌍한 이들을 농락하는 게냐, 아니면 인정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정말 불쌍해서 네 몸을 죽여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고 싶은 게냐. 너의 마음도 모르고 저들은 분명 또 제 멋대로 생각해서 너를 이용 할 것이니, 촛불아, 더 이상 더럽게 타지마라. 그들은 분명 칠흑 같은 어둠에 갇혀 더 아파봐야 한다. 감사를 모르고, 인정할 줄을 모르고, 모두가 자기만 잘 난 줄 알고(웃긴다), 자기만 맞다고 떠들어 대는(더 웃긴다) 저 피해 의식 가득 한 이들을 더 이상 불쌍히 여기지 마라.
미래를 못 보고, 과거에 집착하는 군상들이 너의 측은지심(測隱之心)이 곧 자신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착각하고 있으니, 촛불아, 제발 네 몸을 태워 어둠을 내 쫒지 마라. 오히려 더 짙은 암흑이 저들을 더 밝은 길로 인도하는 정도(征途)가 될 수도 있으니, 제발 촛불아, 아까운 눈물 더 이상 흘리지 마라. “역사는 거울이다”는 논리에 빠져 저렇게 갈길 못 가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제발 촛불아 네 몸을 함부로 태우지 마라. 과연 역사의 거울은 자신들을 어떻게 평가 할지도 모르는 그들이 너의 힘을 빌려 애꿎은 사람들을 더 이상 현혹시키지 않도록, 촛불아, 제발, 제발, 제발 몸을 함부로 내놓지 마라. 이제 온 나라 사람들이 정말 크게 일어나야 할 일이 있으니, 촛불아, 아까운 눈물 함부로 흘리지 마라.
촛불아, 너는 역사의 거울에서 우리가 과연 지금 봐야할 것이 무어라 생각하느냐. 우리를 억누른 더 큰 부정적인 힘이 뭐라 생각하느냐. 정말 이 나라 역사의 큰 흐름을 막고 있는 게 뭐라 생각하느냐. 정말 지금 우리가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게 뭐라 생각하느냐. 할머니들의 원성이 들리지도 않느냐, 미안하다는 말만 들으면 모든 것을 용서해주겠다는 저 피어린 말들이 들리지도 않느냐, 부모 형제 가족 얼굴을 죽기 전에 꼭 한번이라도 보고 싶다는 피의 절규가 들리지도 않는단 말이더냐. 휘청 휘청하는 거대국들이 보이지도 않는단 말이더냐. 형식에 빠진 가르침에 시들어가는 불쌍한 아이들이 정말 보이지 않느냐 말이다. 도대체 지금 네가 불을 밝혀야 할 곳이 어디냐. 도대체 너까지 왜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것이냐.
눈치만 보고 사는 인간들이 언제 어둠 속에 영원히 묻힐지 촛불아, 그 전에 그들에게 너의 희생, 배려라는 유전자를 이식하여 구원 받을 마지막 기회를 주렴. 영혼 없는 인간들의 영혼 없는 소리들이 이 세상을 더 이상 오염시키지 않게. 미선이와 효순이를, 이옥선 할머니들을, 영혼 없는 가르침에 마지막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수 많은 아이들을 너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이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울음소리도 죄라며 소리 없이 뜨겁게 울던 너는 도대체 어디 갔느냐. 촛불아, 나도 절대 용서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