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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통

등록일 2013-11-19 02:01 게재일 2013-11-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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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 시인·오천중 교사

지역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지역작가초청 강연회에 나를 강연자로 초대했다. 중고등학교 학생들만 보다가 초등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기대감에 정말 감사히 가겠다고 했다. 더구나 고향 학생들을 볼 수 있다는 설렘에 기대는 배가 되었다. 늘 머리엔 아이들과 이야기 할 주제로 가득했다.

전교생이 21명뿐인 소규모 학교. 분명 한 때는 규모가 꽤 컸을 것이다. 21이라는 숫자는 우리나라의 많은 사회·교육 문제를 함의하고 있다. 그래도 내겐 그 문제보다 기대가 더 컸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부터 6학년 학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는 뭐가 있을지? 내 수업보단 이 아이들과의 수업에 내 생각의 초점이 더 맞춰졌다.

고향이 지척이라 명절 때도 특별히 고향 간다는 느낌 없이 주말 부모님 댁에 다녀오듯 편히 다녀왔는데 이번엔 달랐다. 고향에 간다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명절 때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두 손 가득 선물 꾸러미가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야기 주제를 정리 하면서 동시에 선물을 생각했다, 고향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기에. 그런데 쉽지 않았다. 키다리 아저씨는 아니더라도 뭔가 의미 있는 선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인 우리 반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첫 번째, 학용품. 당연히 ×였다. 하기야 학용품이 넘치는 시대이니, 아니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시대이니. 두 번째, 책. 더 큰 동작으로 ×를 외쳤다. 아이들은 햄버거, 피자, 게임프로그램, 심지어 스마트 폰 등을 이야기 했다. 정말 쉽지 않았다.

1시간의 강연을 위해 나는 달 포 이상을 준비했다. 초등학교 전교생이 한 자리에 모인 자리라 공통된 주제를 뽑아내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미로에 갇힌 기분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더군다나 한창 꿈 많을 시기의 학생들에게 그냥 스쳐가는 무의미한 시간이 되게 할 수는 없었다. 주제도 잡히지 않고, 선물도 떠오르지 않고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다. 집중이 될 리 만무했다. 매일 매일 학생들 앞에 서고 있지만 정말 어려웠다. 주제의 범위를 넓혀 보기도 하고 좁혀 보기도 했지만, 초등학교 1학년에서 6학년은 넓어도 너무 넓었다.

“만약 미래에서 어른이 된 내가 온다면 지금 나에게 무슨 말을 할까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은 다시 초등학생인 나를 볼 수만 있다면, 세 가지를 꼭 말하고 싶어요. 책을 많이 읽어라, 더 열심히 놀아라, 그리고 더 큰 꿈을 가져라.” 각각의 주제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했다. 앞 두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끝내고 자신의 꿈을 이야기해 보게 했다. 아이들은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경찰, 군인, 소방관, 축구선수 등. 배려와 희생이 가득한 꿈. 순수한 꿈이란 저런 것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그 분들이 고마웠다. “얘들아 선생님이 선물을 준비했다.”한 달 이상을 고민 고민해서 준비한 선물은 바로 저금통. “이게 뭘까?”, “저금통요!”, “아니야?”, “이건 바로 너희들의 꿈통이야! 이제부터 이 꿈통을 잘 키워서 너희들의 꿈을 꼭 이루자!”, “예”

“저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모인 곳이었다. 모든 시선이 소리 나는 쪽으로 향했다. 그곳엔 맑은 눈을 가진 가녀린 여학생이 있었다. 그 여학생을 위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에겐 눈과 귀가 몇 개 있을까요?”, “두 개요!”, “아니에요?”, “…”, “세 개에요. 우리 마음에도 눈과 귀가 있어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가져야 할 것이에요. 밖에 나무가 있어요. 지금 어떤 모습일까요.”, “잎이 떨어지고 있어요!” “그럼 떨어지는 나뭇잎에게 나무가 무슨 말을 했을까요?” 모두들 침묵인 가운데 어린 시인이 말했다. “`잘 가!`라고 말해요!”, “그럼 나뭇잎은 뭐라고 말했을까요?”, “`고마워!`라고 말했어요.” 모두를 놀랐다. 그리고 대시인 탄생에 박수를 보냈다. “혹, 여러분도 들리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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