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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이익 뒤에 가려진 처절한 가정폭력…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3-11-15 02:01 게재일 2013-11-15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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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문학동네 펴냄, 164쪽
한국일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수상작가 황정은(37)씨의 장편 소설 `야만적인 앨리스씨`(문학동네)가 출간됐다.

황정은은 여장 노숙인 앨리시어의 시선과 목소리를 통해 이제까지 그의 소설에서 만나보기 어려웠던 황폐하고 처절한 폭력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황정은은 지난 2005년 등단한 이후 지난 팔 년간 두 권의 소설집과 한 권의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보냈다. 적합한 수식어를 찾기 어려워 그저 “황정은풍”이라고만 이야기될 수 있을 뿐인, 그 누구보다도 개성적인 소설세계를 구축해 왔다. 두번째 장편소설 `야만적인 앨리스씨` 역시 그렇다. 책의 문을 여는 순간 그간 들어본 적이 없는 낯선 목소리가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고 쉴 새 없이 쏟아져나오는 듯한 환상에 빠져든다. 마치 앨리시어의 목소리를 소설 속으로 그대로 옮겨놓기라도 한 듯 말이다. 문장으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그리하여 결국 읽는 이의 귀에 들리도록 만드는 불가능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처럼.

앨리시어는 재개발을 앞둔 `고모리`에 살고 있다. `무덤`이라는 어원을 가진 이곳은 식용을 목적으로 길러지는 개들을 가둔 개장, 그 개들의 뼈와 내장과 가죽을 먹고 큰 은행나무, 너클크레인과 폐지더미로 둘러싸인 고물상, 모래언덕으로 이뤄진 공사장과 악취가 풍기는 하수처리장, 폐쇄된 단추공장 등으로 이뤄져 있다. 무엇보다 이곳을 황무지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단단히 한몫을 챙겨 떠나기 위해 남은 마을 사람들 때문이다.

앨리시어와 그의 어린 동생은 어머니에게 무지막지한 구타를 당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수시로 벌어지는 이들 모자의 일상 자체다.

“내가 세라고 했지? 세라고 했는데 왜 세지 않냐. 몇 대까지 맞았는지 세지도 못하냐. 잊어버렸냐. 너는 그 정도 머리도 없는 짐승이고 잊어버렸으니까 다시 하면 되겠네? 잊어버린 네가 순전하게 잘못했으므로 처음부터 다시 하면 되겠다. 세라 머리부터 꼬리뼈까지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십 씨발 십이 십삼 사 오 육 칠 팔 다음이 뭐냐 응? 다음이 뭐야?”

앨리시어의 아버지는 이러한 폭력적인 상황에 한없이 무심할 뿐이며 마을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이들은 한 몸처럼 오로지 재개발 이후 치솟을 땅값에만 혈안이 돼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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