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으로 유명했던 디트로이트, 한 때 미국 최대의 도시로 불렸으나 지금은 지방 파산을 신청하며 버려진 도시가 돼버린 그 도시의 삭막한 거리를 누군가가 걷고 있다. 노동으로 일관된 그의 삶을 대변하는 듯 등은 굽었고, 걸음도 빠르지 않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무심한 듯 남자는 오직 앞을 보고 걷고 또 걸을 뿐이다. 서칭 포 슈가맨이란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남았던 장면이다.
`서칭 포 슈가맨(Searching for Sugarman)`, 말 그대로 슈가맨을 찾아가는 다큐 영화다. 어깨에 기타를 매고 눈 덮인 디트로이트를 걷고 있는 초로의 그 남자가 소위 말하는 영화의 주인공이며, 사람들이 그토록 찾고 싶어 하던 슈가맨, 로드리게스다.
1970년대, 까페에서 노래를 부르던 로드리게스는 프로듀서의 극찬을 받으며 발탁되어 2번의 앨범을 발매한다. 기대 속에 제작되었건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앨범은 단 6장만 판매됐고 대중의 관심을 채 받아보지도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그의 노래가 인종차별, 독재정치 등으로 심각한 사회갈등을 일으키고 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알려지게 됐고 저항의 메시지가 가득 담긴 가사와 멜로디가 큰 반향을 일으키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그의 음악은 일상이었어요. 모두가 그의 앨범을 샀죠. 반체제적 메시지가 담긴 음악이었죠. 사회 내 저항운동의 시작이었고 많은 이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어요. 하지만 그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앨비스 프레슬리보다 더 유명한 스타였지만 무수한 소문만 떠돌 뿐 실체가 알려지지 않은 로드리게스를 두 사람의 열성팬이 찾아 나서며 영화가 시작된다. 자살했다는 말도 있었고, 무대 위에서 분신으로 극적인 생을 마감했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어렵게 찾은 그는 소문과는 달리 멀쩡히 살아 있었고, 심지어 디트로이트를 떠나지도 않은 채 그곳에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퍼즐을 맞춰가듯 사라진 무명가수를 찾아가는 여정이 이쯤에서 끝났다면 기구한 그의 인생을 잠시 안타까워하다 잊혀졌을 거다. 하지만 영화는 그를 찾아 수십년 간 대중의 사랑을 받은 슈퍼스타였다는 것을 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로드리게스의 음악에 영향을 받고 저항운동을 이끌었던 젊은 음악가들은 느닷없는 그의 생존 소식에 궁금해 한다. 그가 정말 전설의 스타, 로드리게스가 맞을까? 이런 의구심은 그의 연주가 시작되자 말자 눈 녹듯 사라진다. 세월의 흔적이 오롯이 남은 투박한 손으로 연주한 그 노래는 분명 그들이 몇 번이고 들었던 로드리게스의 곡이 맞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전에 존경해 마지않던 그를 만나 함께 공연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해 한다. 단 6장의 앨범만을 판매하고 사라져야 했던 무명의 젊은이는 이제 한 세월을 넘긴 초로의 모습으로 그를 환호하는 수천 명의 팬들 앞에 음악가로서 다시 서게 된다. 살아있게 해 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만일 그가 음악을 수단으로 성공의 헛된 열망을 꿈꾸던 젊은이였다면 혹은 음악을 사랑했지만 실패 앞에 좌절하는 나약한 사람이었다면 그처럼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기도, 또 세월을 뛰어넘은 감동을 주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생계를 위해 음악활동을 접고 수리공으로서 살아갈 지언정, 음악에 대한 열정과 꿈을 놓지 않았던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이전과 같이 수리공으로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앨범 수익은 가족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욕심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세속적인 성공에도 대중의 관심에도 아랑곳없이 초연히 음악을 즐기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마치 구도자 같다. 나도 그처럼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일에 묻혀 한 해를 보내며 문득 내 꿈은 무엇이었을까 떠올려 보기도 하지만, 이제는 가물가물한 꿈의 흔적. 낙심도 되지만 새롭게 시작해 보자고 마음먹어 본다. 슈가맨, 그도 있지 않은가? 서칭 포 슈가맨은 어떤 상황에서건 꿈을 잊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한 편의 위로같은 영화다. 올해가 가기 전에 즐겁게 감상하시고 당신만의 꿈도 이뤄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