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은 건 옳고, 그른 건 그르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 정치판 얘기다.
최근 여야는 지난 대통령선거에 국가기관이 불법 개입했다는 의혹을 서로 제기하면서 극한 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이 의혹을 제기하면 무조건 부인하고 본다. 야당은 야당대로 힘있는 여당이 조직적이고 전국적인 규모의 음모를 꾸며 권력을 빼앗아갔다는 식의 주장을 반복해서 펼친다. 국민들이 자신의 말을 믿어줄지 아닐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민주당은 국회 의사일정을 한때 거부하고 장외집회를 여는 한편,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원샷 특검`을 주장하며 시민단체까지 포함한 범야권 연대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특별검사 도입과 법안·예산안 처리를 연계할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여권을 압박하고 나서 주목된다. 민주당이 실제 특검과 법안·예산안 처리를 연계한다면, 새 정부 첫 정기국회가 공전과 파행 속에 `불임 국회`로 전락, 새해 예산안도 해를 넘겨 처리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현 상태로 가면 법정처리시한(12월2일)은 고사하고 연내에 새해 예산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준예산 편성 가능성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국 경색은 풀릴 기미가 별로 없다. 민주당은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경찰 등 국가기관들이 지난 대선에서 조직적으로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여론 개입과 조작에 나섰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누리당도 이에 질세라 전국공무원노조의 조직적 대선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공무원 14만 명이 소속된 전공노가 SNS뿐 아니라 공식 홈페이지까지 이용하는 등 실제로 조직적이고 노골적인 대선 개입 활동을 벌였다는 게 새누리당 주장이다.
이번 주 검찰이 지난 대선 기간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사전 입수 및 유출 의혹 사건과 관련해 새누리당 김무성·서상기·정문헌 의원을 소환키로 한 것도 여야간 대선 개입 공방을 더욱 격화시킬 것으로 관측된다.
여당과 야당 모두 배운 사람들이고, 말귀를 알아들을 만한 교육을 받았는 데도 서로 대화가 안된다. 이렇게 서로 말이 다른 것은 무슨 이유일까.
박완서의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떠올리게 된다. 싱아는 마디풀과의 여러해살이풀로서 어린 잎과 줄기는 신맛이 있으며, 생으로 먹기도 한다. 소설에서 매일같이 인왕산을 통해 등교하던 작가는 고향 박적골에서 자주 먹었던 싱아가 생각나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바야흐로 싱아의 계절이었건만 눈씻고 찾아봐도 싱아를 발견하지 못한 그녀는 드디어 유명한 질문을 던진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인왕산에도 싱아가 있었을 것이지만 박적골에서 보던 싱아와는 다르게 보였을 것이다. 즉, 싱아가 있었지만 어린 시절 자주 먹던 `바로 그 싱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어치웠을 것이라 생각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작가 역시 소설에서 `같이 겪은 일에 대한 기억이 서로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놀라면서 기억이라는 것도 결국은 각자의 상상력일 따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적고 있다. 같은 경험을 하고서도 서로간에 얼마든지 다르게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당과 야당이 서로 다른 주장으로 평행선을 달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서로 같은 경험을 하고도 다르게 기억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여야 정치인들의 이해못할 대립정치에도 이유는 있는 셈이다.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 하고 의심하지 말자. 싱아는 바로 당신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