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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을 걸으며

등록일 2013-10-29 02:01 게재일 2013-10-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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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편집국장

지난 주말 모처럼 찾은 청계천은 갑작스레 쌀쌀해진 날씨에 옷깃을 세운 행락객들과 산책나온 시민들로 붐볐다. 청계천 광장에서는 세계 여러나라의 먹거리와 악세사리를 파는 다문화장터가 열리고 있었고, 한켠에서는 잉카(16세기 초까지 남아메리카 안데스 지방의 문명을 형성했던 인디오를 뜻함)음악이라고 불리는 안데스 전통음악인 폴크로레(Folkore)가 신비스럽고 구슬픈 분위기를 자아내며 연주되고 있었다. 께나(Quena)라고 불리는, 대나무로 만든 관악기의 깊은 울림은 마음을 씻어주는 듯 했다.

인파가 넘치는 청계천 광장에서 50미터 가량 떨어진 천변에는 지난 2005년 청계천 복원사업이 끝난 날 세운 기념비문이 붙어있었다. `청계천 새물맞이에 부쳐`란 제하의 비문은 청계천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었다.

`…오늘의 결실을 맺기까지 반세기의 기다림이 있었고, 4200여의 만남이 있었고, 끝없는 대화로 지새운 숱한 밤이 있었으니 지나온 날들을 생각하면 어찌 소회가 없을까만 기쁨의 소식이 하늘에 닿고 땅에 미치는지라 우리 모두가 덩실덩실 춤출 수 있는 것은 협조를 아끼지 않았던 22만 청계천 상인 때문이오, 희생을 감내했던 노점상 때문이오, 땀과 눈물로 보람을 일궈낸 기업과 근로자 때문이오, 헌신을 다해준 공직자 때문이오, 끝까지 공감하고 지지해준 시민단체 때문이오, …` 비문은 이어 `이제 청계천에는 맑은 물과 눈부신 햇살 시원한 바람, 갯버들과 창포가 되돌아 올것이며, 수변을 따라 전통놀이가 신명을 더하고, 아낙이 빨래하고, 아이가 연날리던 고전의 낭만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벅찬 기대를 적었다.

비문의 기록을 보노라니 몇 해전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청계천 복원사업의 주역이었던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청계천을 거닐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당시 중심가 복개도로를 뜯어 지금의 청계천으로 복원하기까지 참으로 많은 상인들과 노점상, 시민단체들을 설득하고 또 설득한 끝에 청계천 복원사업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감회어린 목소리로 회고했다. 탁월한 추진력으로 청계천 복원사업에 성공한 이 대통령은 이후 4대강 운하를 공약으로 걸고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4대강 운하는 끝내 추진하지 못했다. 사업 추진 초기부터 전문가그룹 마저 편 나누듯 갈라져 “국가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란 측과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가 우려된다”며 찬반이 엇갈렸던 4대강 운하는 야당과 국민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됐다.

그 대신 우여곡절끝에 4대강 운하를 축소한 4대강 정비사업이 시행됐는데,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열린 첫 국감에서 4대강 정비사업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여의도 860배에 달하는 753만평의 매장문화재 분포지가 영구훼손됐다거나 물 흐름이 느려지면서 용존산소가 부족, 금강에서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고, 조류도 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고, 낙동강에서는 노랑부리백로, 남생이 등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 28종이 자취를 감췄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최근 자신과 함께 일한 청와대 행정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4대강 사업 비판은) 비판을 위한 비판일 뿐이다. 당당하게 대응하라”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때도 비판이 있었다”고 4대강 사업의 당위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어떤 정책이나 사업의 공과를 평가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청계천 복원사업이 `대체로 성공적`이란 평가를 얻기까지 8년여의 시간이 필요했듯 4대강 사업에 대한 평가 역시 시간이 흘러야 가능할 듯 하다. 다만 이전 정부가 국력을 기울여 시행한 4대강 사업이 과연 비판론자들의 말마따나 환경오염만 일으키는 잘못된 사업이기만 할까. 그렇게 믿고싶지 않은 게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일 것이다. 무엇이든 흑백논리로 `희지 않으면 검다`고 해서야 될 말인가. 청계천을 걸으며 `적에게 가차없는` 정치판의 세태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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