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전두환 전 대통령 미납 추징금 환수과정에서 또 다시 세간의 주목을 끈 것은 다름 아닌 고가의 미술품들이다. 검찰의 압류 특별 환수팀이 전두환 전 대통령과 장남 재국이 보유하고 있던 미술품 500여점을 압류하자 급기야 전두환 전대통령 일가는 지난 9월10일 대국민 사과와 함께 미납 추징금 1천672억원을 모두 자진 납부하겠다고 밝혔다. 이재현 CJ회장의 비자금사건에서도 고가의 미술품이 문제가 되었던지라 국내 미술계 안팎에서는 적잖은 파장이 일고 있다. 전재국의 어마어마한 미술품 컬렉션 리스트가 알려진 이 사건으로 또 다시 미술품이 `비자금 은닉대상`으로 지목받음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연이은 사건들로 인해 미술품이 비자금 조성의 원흉처럼 비춰지고 있으나 이는 지극히 일부에 해당된다고 본다. 대다수의 콜렉터들은 전문화랑이나 아트페어 등을 통해 정상적인 방법으로 미술품을 구입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들로 인해 진정으로 미술을 사랑하고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미술애호가들이나 후견인들이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압류된 미술품 중에서 유독 눈길을 끌었던 작품 중 하나가 영국 현대미술가 데미언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라는 실크스크린 판화 작품이다. 해골그림에 다이아몬드를 붙여 만든 이 작품은 원작만큼의 가치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일반인들이 구입하기에는 부담이 되는 2천만원대이다.
세계 현대미술계의 악동으로 잘 알려진 데미언이 만든 `신의 사랑을 위하여`라는 원작은 1720년에서 1810년 사이에 살았던 35세의 유럽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두개골을 모델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백금으로 주형을 뜬 실물 크기 두개골에 52.5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포함해 다이아몬드 8601개를 촘촘하게 박아 만들어졌다. 제작에 사용된 다이아몬드를 전부 합치면 자그마치 1106.18캐럿에 이르고 작품가격은 무려 5천만파운드(918억5천600만원)이다. 그러한 원작에 비해 전재국이 소장했던 작품은 보급용 판화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작품 주제는 죽음이다. 그 죽음을 보여주는 방식이 너무도 직접적이고 충격적이어서 그는 `악마의 자식`으로, `엽기의 예술가`로 항상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그러나 무관심과 냉소로 끔찍한 살육을 보여주는 작품 이면에는 어떤 숭고함과 비장함이 어려 있어 죽음에 대한 경고와 성찰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데미언의 작품처럼 현대미술은 한때 인간에게 그의 적절한 위치를 부여해 주었던 전통적인 가치 질서가 붕괴함으로써 비롯됐다는 주장이 있다. 자신의 위치를 앎으로써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안다고 한다. 그러나 신의 죽음과 더불어 그러한 질서는 설립자자와 토대 모두를 잃게 됐다고 한다. 물론 그러한 질서가 여전히 남아 있어서 그럴 듯한 은신처와 안전함을 제공해 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러한 질서가 공허한 것이 됐음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만 그러한 것이다. 이처럼 신의 죽음은 인간의 위치를 바꿔 놓았으며, 인간으로 하여금 아무런 방향감각도 갖지 못하게 만들었다. 신이 없는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또한 모든 것이 무의미한 것이 될 위험이 있기도 하다고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는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심지어 허무주의자조차도 여전히 의미를 요구하며 이에 대한 이러한 요구로 인간은 결코 자신의 상황이 갖는 부조리성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고 했다. 인간은 부조리와 더불어 살 수 없으며 그것에 맞서 싸워야만 한다. 그리고 만약 부조리가 현대인의 상황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라면 인간은 부조리와의 투쟁을 통해 자기 자신까지 부정하게 된다.
현대미술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미술을 통해 인간에게 잃어버린 직접성을 회복시키려는 시도와 절대적인 자유에의 추구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