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전 포항시 북구 송라면 구진마을에서는 독특한 민속놀이 재현행사가 있었다. 이 마을에 전해오는 앉은줄다리기를 면민 전체의 행사로 승격시켜 포항시민들에게 당당히 선보이는 행사였다.
앉아서 줄을 당긴다고 해 `앉은줄다리기`라고 한다. 또 암줄과 수줄이 각각 네 가닥으로 돼 있는데 줄 모양이 기(`게`의 방언)를 닮았다고 하여 `기줄당기기`라고도 한다.
원래 이 마을은 별신굿을 해 왔는데 어느 해에 굿을 하던 무당이 굿판에서 급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를 불길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점치는 사람에게 물어 보니 굿을 하지 말고 줄을 당기라고 하여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여자들만 당기고 앉아서 당겨야 한다고 해서 여자들만 참가한 가운데 앉아서 당기게 됐다 한다.
정월 대보름날 줄다리기를 하는데 줄을 당기는 것은 여성들의 일이지만 행사를 하도록 준비해 주는 건 순전히 남성들의 몫이다. 줄이 준비되면 동네 아낙네들이 줄다리기 장소로 모인다. 줄꾼들이 자리를 잡아 앉으면 이장의 신호에 따라 줄을 당긴다. 줄다리기에 참가한 여성들은 있는 힘을 다해 줄을 당기고 남자들은 풍물을 울리며 응원을 한다.
승부가 결정되면 이긴 쪽에서는 줄다리기에 참가한 아낙네들이 암줄과 수줄을 연결하는 비녀목을 빼서 어깨에 메고 춤을 추며 제당까지 행진한다. 제당 앞에 비녀목을 내려놓고는 그 앞에 상을 차리고 마을의 수호신께 줄다리기가 무사히 끝났음을 고한다. 이 의식이 끝나면 한 바탕 풍물을 크게 울리며 신나게 춤을 춘다.
구진마을의 줄다리기는 몇 가지 면에서 주목된다.
첫째, 줄의 형태가 게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안 지역 주민들에게 있어 게의 붉은 색과 날카로운 발은 각각 악귀를 쫓는 의미로, 무수한 알은 다산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결국 게의 형태를 모방해 줄을 당기는 것은 액운을 막고 풍요다산을 기원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남녀의 성적 교합을 상징하는 암줄과 수줄의 연결 절차 또한 풍요다산을 기원하는 행위로 이해된다.
둘째, 구진마을 줄다리기는 여성들만 참가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남자들은 줄을 준비하거나 흥을 돋우는 부수적인 역할만 담당할 뿐 줄을 당기는 행위는 순전히 여자들의 몫이어서 구진 마을의 줄다리기는 철저하게 여성 중심임을 알 수 있다.
셋째, 줄을 앉아서 당긴다는 점이 이채롭다. 앉아서 줄을 당기는 방식은 전국적으로 그 예를 찾기 어려운 아주 독특한 형태이다. 하지만 여성의 엉덩이 부분을 땅에 밀착시킨 채 다리를 벌리고 줄을 당기는 모습은 흡사 출산하는 여성을 연상케 하는데 이러한 행위의 바탕에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넷째, 줄다리기를 통해 평소 억눌려 왔던 여성들의 성적 감정이 적극적으로 표출된다는 점이다. 이 마을 줄다리기에서 암줄과 수줄을 연결하는 비녀목이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다고 볼 때 승부가 가려진 후 이긴 편 여성들이 비녀목을 빼서 어깨에 멘 채 마을을 돌며 춤을 추는 행위는 전통 사회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여성에 의한 `성적 반란`으로 볼 수 있다.
이 마을의 앉은줄다리기가 언제 시작됐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줄다리가 시작된 이래 한 번도 중단되지 않았고 요즘도 매년 정월보름날 행해지고 있다. 2011년에 처음 수협중앙회의 지원을 받아 송라면 해안 5개 마을 합동으로 시연행사를 시작한 이래 3년 만에 경상북도와 포항시의 지원을 받는 송라면민들의 축제로 발전했다. 아직도 마을 현장에 살아있는 구진마을 앉은줄다리기는 보존 전승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이 마을만의 매우 독특한 민속놀이다. 민속문화적 가치와 함께 지역축제로 자리매김할 경우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도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니 연구와 함께 보존 전승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이참에 포항시에서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등록을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