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0월이면 국정감사가 열린다. 올해 국정감사는 14일부터 시작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0일간 진행된다.
지난 1988년 여소야대 국회 속에서 부활돼 올해로 25년째를 맞은 국정감사는 지난해보다 73곳 늘어난 630개 기관을 감사하는 헌정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국정의 구석구석을 들여다 보는 폭넓은 감사가 될 것이란 긍정적 전망과 함께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피감기관을 들여다보는 것이 어려워 부실이 우려된다는 부정적 전망이 교차한다.
특히 올해 국감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8개월동안 드러난 새 정부 정책의 공과를 처음으로 따지는 무대라는 점에서 여야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언제나처럼 여야는 국정감사를 앞둔 지난 13일 일제히 소모적 정쟁을 지양하고 `정책국감·민생국감`에 주력하겠다는 각오를 밝혔지만 말대로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이번 국감에서는 국가정보원 개혁안,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미(未)이관, 기초연금 공약후퇴 논란, 역사 교과서 개정 방향,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퇴를 비롯한 인사파동, 동양그룹 부실사태, 세제개편안, 4대강 사업 평가 등이 핫이슈가 될 전망이다.
새누리당은 이번 국감을 통해 집권 여당으로서 `민생·경제·일자리`라는 3대 이슈를 다룰 계획이다. 여당이지만 정부를 일방적으로 감싸기보다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해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이끄는 방향으로 국감에 임하겠다는 전략이다.
민주당도 무차별적인 대여 공세보다는 민생·복지 문제에서 정권의 실정을 드러냄으로써 `대화록 정국`의 틀을 깨고 반전의 계기로 삼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한 손에는 민주주의, 한 손에는 민생`이라는 구호를 앞세워 두 달 넘게 국민을 상대로 장외 전선을 지켜왔지만 별무성과 였기에 대여(對與) 투쟁의 연속성을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민주주의 회복과 민생 수호`를 목표로 국정감사를 하겠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검찰·국가정보원·감사원·국세청 등 권력기관 개혁 △4대강·원전·자원외교 비리 등 권력형 부패 규명 △복지공약 후퇴와 부자 감세 철회 △ 경제민주화와 `을(乙)지키기` △언론자유와 공정성 확립의 5대 이슈에 집중하고, 편향 교과서 문제도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그래서 그런지 국정감사를 주도하는 여야 원내대표의 각오는 한결같이 교과서 정답(?)수준이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정쟁보다는 민생 국감이 되도록 여당이 솔선수범하겠다”면서 “박근혜정부의 첫 국정감사인 만큼 정부가 잘못한 게 있으면 시시비비를 가리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했고,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이번 국감은 우리가 민주주의 살리기, 약속 살리기, 민생 살리기를 통해 국민의 움츠러든 가슴을 펴게 하고 기를 살리는 국감이 되도록 온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이런 말들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문제는 정치권 스스로가 그 말을 진심으로 실행할 의지가 있느냐는 점이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만일 태양과 달이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한다면 곧 사라져버릴 것이다`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은 모든 신념의 중심이기 때문에 자신감을 잃으면 인생을 헤쳐 나갈 수 없다. 어떤 일을 눈앞에 두고 자신감을 잃는 것은 왕왕 겪는 일이다. 작전 실시, 시인의 글쓰기, 세일즈맨의 첫날, 새색시의 첫 요리 등을 생각해보라. 그러나 실패를 두려워 해서 행동을 꺼린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최상의 방법은 망설이지 않고 눈앞의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만약 진정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실패에 신경쓸 필요는 없다.
이번 한번만이라도 `멱살잡는`투쟁의 국회가 아니라 의젓한 토론문화와 정책공방이 펼쳐지는 성숙한 국회, 생산적인 국정감사가 되길 빌어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