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아버지` 김원일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386쪽
베스트셀러 장편소설 `마당깊은 집`의 소설가 김원일(71)이 최근 자전소설 `아들의 아버지`(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50년에 걸쳐 착잡한 우리 세계의 진실을 찾아 한국전쟁과 분단 비극을 파헤치는 데 주력하며 `분단 소설의 미학`을 보여준 김 작가는 `아들의 아버지`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작품 곳곳에 희미하게 등장했던 `아버지`의 생애를 추적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어떤 가상 인물을 앞세우지 않고 자신이 직접 자신의 이름으로 등장해 정면에서 아버지를 마주한다. 전쟁 중 아버지가 월북한 뒤 삯바느질로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는 어머니 아래서 누나와 두 사내 동생과 함께 `마당 깊은 집`에 세 들어 살며 호되게 장자의 역할을 종용하는 어머니를 가짜 어머니로 의심하는 과정을 통해 시대에 빼앗긴 어머니 찾기를 그린 소설이 `마당 깊은 집`이라면, `아들의 아버지`는 여덟 살 이후 만나지 못한 아버지의 자취를 추적한 잃어버린 아버지 찾기라 할 만하다. 또 `마당 깊은 집`이 열세 살 무렵의 작가의 모습을 담았다면 이 책은 이전의 이야기, 태아일 때부터 아버지가 월북하던 여덟 살 무렵까지를 다룬, 그 전사(前史)라 할 수 있다.
상업학교를 나와 읍 소재 금융조합 서기로 일하던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고, 귀국한 뒤에도 집에 머물지 않고 농촌에서 사회운동을 하며 배움에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강습소를 열기도 한다.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부산에 머물며 자치단체를 조직하고 사상 공부에 열을 올리던 중 남로당 경남도당 책임지도원 자리에 앉게 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인공치하의 서울에는 여기저기 인공기가 내걸렸다. 집행부 사무실은 물론 드문드문 일반 가정집에서도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정부 수립 이후 공산당 가담자 색출에 혈안이던 이승만 정권이 전쟁이 나자 한강 다리를 폭파하고 남쪽으로 피신한 이후였다. 그리고 3개월 뒤 “인민군이 문산과 동두천 쪽으로 밀고 내려온다느니, 국군이 괴뢰군을 되치고 올라가 해주를 탈환했다느니, 한동안 전황이 엇갈”리는 사이 미군 참전을 달성해낸 남한 정부와 국군이 다시 북진을 시작하고 서울 거리의 사람들은 어느새 어디에서 났는지 모를 태극기를 가슴에서 꺼내들고 외친다. “인민공화국 만세”를 외치던 국민들이 “국군과 유엔군,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작가는 아버지 친구가 운영하는 영진공업사 뒤 객차방에 머물고 있었는데, 노동부 간부의 집이라는 동네 사람들의 밀고를 듣고 들이닥친 미군이 쏘아대는 총질을 피해 왕십리로 피신을 한다.
이 인상적인 장면은 작가의 세계관을 가장 잘 피력한다.
작가는 이웃의 밀고나 미군의 총질을 객관적으로 감정 없이 묘사할 뿐 한 번도 원망의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생사의 기로에서 인공기를 드는 일과 태극기를 드는 일이 어떤 사상의 지배도 아닌 삶의 의지에서 나온 행동이듯 당시는 그저 누구를 원망하고 탓할 수 없는 한민족의 고통스런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을 살리고 국가를 세우는 내재적이고 근원적인 사상 찾기보다는 망상 대 망상으로 대립하는 지금의 정치 상황에서 이 소설은 단순한 개인사를 뛰어넘어 우리 현실의 바로보기가 될 것이다.
월북으로 헤어질 때의 아버지 나이보다 두 배가 넘는 고희에 이르면서 작가는 이제야 정면으로 아버지의 삶의 실제를 추적한 이 소설을 통해 개인적인 아버지를 온전히 찾아냄과 동시에 기구한 민족의 안쓰러운 역사, 질곡의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따뜻하게 다독인다. 작가는 해방과 전쟁 사이의 시대적 공간을 역사적 사실에 의거해 르포식으로 기술해나가는데, 덕분에 소설은 그 어떤 현대사보다 많은 실증 사료와 구술 자료를 참조하고 직접 인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생애와 아들(자신)의 유년을 사실대로 반영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작가 특유의 소박한 삶의 실제는 어떤 소설보다도 더 소설적이다. 문단의 거대한 존재 김원일이 소년으로 등장해 겁먹은 채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누나의 손을 잡고 석탄 무개차를 타고 시커멓게 까마귀가 되어 피난을 하는 모습은 읽는 이로 하여금 눈물과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