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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된 삼고초려

등록일 2013-10-08 02:01 게재일 2013-10-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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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편집국장

한나라 말기 혼란스러운 시대, 유비는 백성을 구제할 큰 뜻을 품고 뛰어난 인재를 구하려 했다. 이때 어렵게 만난 재사인 서서는 어머니의 거짓서신을 받고 조조에게 가면서, 유비에게 제갈공명을 `주왕조 8백년 유업을 이뤄낸 강태공과 한나라 4백년을 이뤄낸 장량같은 인물`이라고 추천했다. 유비는 서서가 떠나면서 추천한 제갈공명을 만나기 위해 초가집을 세 번이나 찾는다. 유비는 서서를 통해 수경선생이 일찍이 추천했던 천하의 기재 `와룡과 봉추`중에 제갈공명이 와룡임을 알고 몹시 기뻐하며, 제갈공명을 무려 세 번이나 찾아간 다음 간신히 만났고, 끝내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자신의 뒤를 봐주고 있는 유표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인데다 자신은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는 입장이었기에 당시 유비는 너무나 답답한 상황이었다. 이후 제갈량은 한나라가 망하자 유비를 한나라를 이은 촉한의 황제로 세웠다. 제갈량은 유비가 죽은 후 유비의 뜻을 이어 나라를 튼튼하게 기반을 다지고 한나라를 망하게 한 위(魏)나라를 정벌하러 가면서 2대 황제 유선에게 출사표를 올렸다. 여기에서 전대 유비가 자신을 찾아왔던 일을 회상하며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말을 썼다. 이후 영웅이 인재를 간곡하게 찾아다닌 경우에 유비와 제갈량의 일화로서 삼고초려라는 말이 대표적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삼고초려는 단순히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인재를 구하러 몸소 누추한 곳까지 찾아다니는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주인공인 제갈공명이 비록 대단한 인물이지만, 그저 한미한 선비에 불과했다. 비록 가진 땅과 재산 등은 없으나, 당시 명성을 드높이던 유황숙이 그런 사람을 세 번이나 찾아가 수 십번 절을 하며 간청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은 또 다른 해석을 낳는다. 바로 뜻있는 선비나 무명씨에 대해 극진히 대접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려 인재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천리마를 구하기 위해 천리마의 뼈를 큰 돈을 주고 사들인 어느 왕의 고사를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당시는 위-오-촉이 천하를 놓고 다투는 시절이었다. 조조의 위나라는 이미 가장 크고 노른자위 땅을 점령해서 인재도 넘치는 상황. 따라서 이런 퍼포먼스는 아직 왕조의 기초조차 닦지 못한 상황에서 꼭 필요한 전략적인 포석이었을 것이다.

오늘의 정치에서 삼고초려는 어떤 의미일까. 민주당 손학규 상임고문이 10·30 경기 화성갑 보궐 선거에 대한 당의 출마 요청을 고사하자 김한길 대표가 손 고문을 출마토록 하기 위해 `삼고초려`에 들어갔다. 당초 손학규 상임고문은 “대선에 패배, 정권을 내주게 한 죄인이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게 국민 눈에 아름답게 비쳐지지 않을 것”이라며 “내 입장에서 아무리 희생과 헌신을 한다고 생각해도 국민 눈에는 욕심으로 여겨질 것”이라며 불출마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새누리당 후보인 서청원 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와의 `빅매치`를 성사,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미(未)이관`정국에 따른 수세국면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손 고문의 출마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불출마 입장 피력에도 불구하고, 당내 출마 압박이 거세지자 손 고문 역시 한때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7일 오전 결국 “대선 패배로 정권을 내준 죄인으로서 지금 나설 계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재확인하게 됐다”고 출마를 고사했다. 손 고문으로서는 선거패배시 떠안아야 할 위험부담도 있지만, 지역위원장인 오일용 예비후보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손 고문에게 있어 갑작스런 보궐선거 출마요청에 이은 당 지도부의 삼고초려는 부담스런 일이기도 했겠지만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에서 두번이나 대선후보경선에 나섰다가 실패한 그의 입장에서 당 대표선수로 뛰어달라는 취지의 `삼고초려`는 또 하나의 훈장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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