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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과 신뢰를 뛰어넘자

등록일 2013-10-01 02:01 게재일 2013-10-0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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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편집국장

원칙과 신뢰를 지켜온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후퇴에 대해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매달 2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대선공약이 내년 7월부터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기준 상위 30%를 제외한 나머지 70%에게 매달 10만~20만원의 기초연금을 차등지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대선공약에 비해 대상과 지급액이 축소된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과 야권은 `공약 파기`라며 집권당과 대통령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어쨌든 대선공약이 원안대로 지켜지지 못한 마당이니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우회적인 해명보다 직접적인 사과의 뜻을 표명, 국민의 이해를 구한 것은 잘한 일이다. 다만 여권은 이번 조치가 공약 포기가 아닌 재정 현실을 고려한 `불가피한 수정`임을 강조하며 방어에 나섰다. 박 대통령도 “이것이 결국 공약의 포기는 아니며 국민과 약속인 공약은 지켜야 한다는 저의 신념은 변함없다”고 강조했지만 기약없는 약속일 수 밖에 없다.

야당은 모처럼 기가 살아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 기조만 철회해도 충분히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데도 복지공약을 축소하고 지방에 재정부담을 떠넘겨 민생을 파탄내고 있다며 박근혜 정부의 복지 공약 후퇴를 공격하고 나섰다. 김한길 대표는 현 정부를 `불효정권`이라고 명명했고, 전병헌 원내대표는 “`거짓말을 하려면 크게 하라, 반복하라. 그럼 대중은 믿는다`던 히틀러의 말이 생각날 지경”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장병완 정책위의장은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원칙과 신뢰는 선거용 내부 캠페인에 불과했다”면서 박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그대로 옮겨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꼬집었다.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 역시 “박 대통령이 밝힌 기초연금 수정안은 명백한 공약 사기”라고 공격했다.

문제의 핵심은 이른바 `증세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던 박 대통령이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약을 수정한 배경이다. 박 대통령이 밝힌 기초연금 공약 수정 배경에 따르면 현재 재정여건도 좋지 않지만 모든 어르신들께 20만원을 지급할 경우 2040년 157조원의 재정소요가 발생, 미래세대에게 과도한 부담을 넘기는 문제가 지적됐다는 것이다.

그동안 새 정부의 복지공약이 재정 여건상 실현이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고, 이로 인해 박 대통령이 강조해온 `증세없는 복지`의지와 충돌이 잦았던 게 사실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새 정부는 재정여건상 무리가 있는 공약들을 새롭게 전면 수정ㆍ보완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예산이 소요되는 복지정책을 공약했다는 이유 하나로 무리하게 실행해서도, 할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박근혜 정부의 복지정책 골간을 짠 주역으로 꼽히는 진 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번 사태로 사표를 내고, 청와대의 업무복귀 명령에 따르지 않는 `항명파동`을 일으켜 대통령의 인사리더쉽에 상처를 낸 것은 심각한 문제다. 새 정부 들어 양건 감사원장(8월23일), 채동욱 검찰총장 사의(9월13) 파문에 이어 불과 40일 사이에 3명의 고위공직자가 청와대와 충돌, 잡음을 일으키며 국정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새 정부 출범초기 인사파문이 인사 선정과정의 `나홀로 검증`이 문제가 된 반면 지금은 박 대통령과 장·차관, 청와대 수석 등 권력 핵심인사들과 소통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노인복지 공약을 둘러싼 혼선이 박근혜 대통령이 고수해온 원칙과 신뢰의 리더십을 흔들고 있다. 데일 카네기는 “친구를 얻고 내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먼저 상대의 의견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상대의 자존심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은 원칙과 신뢰의 리더십에 더해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답은 멀리 있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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