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바탕에 검정색 땡땡이 무늬로 장식된 대형호박과 어두운 암실을 이용해 화려한 조명, 거울로 꾸며진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연신 환호성을 질러댄다. 그리고 노랑과 빨강 등 화려한 원색의 조형물들을 배경으로 찍어대는 사진 속에는 아름다운 미술관의 추억들이 하나 가득 담겨진다. 화가가 무엇을 그리려고 했는지는 철학적 배경은 결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아름다운 그림들이 전해주는 따스한 느낌들이 좋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만들어 내는 묘한 매력을 처음으로 경험할 수 있기에 미술관 체험이 점점 재미있어 진다”
요즘 대구미술관에는 그동안 다른 미술전시회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색다른 체험을 위해 연일 관람객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이 전시회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일본에서 활동 중인 현대미술가 쿠사마 야요이이다.
쿠사마 야요이(1929~)는 일본에서 태어난 여성작가로 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엄격한 어머니, 아버지의 방탕, 가정의 파산 등을 겪으며 암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강박증이라는 정신질환을 제대로 치유 받지 못한 채 성장했다. 자칫 정신병 환자로 전락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미술을 통해 자신의 병을 치유하며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본인을 위대한 예술가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렸다. 그녀는 일본, 미국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러한 시간을 통해 다양한 상념과 예술적 매체를 수용해 나갈 수 있었으며 자신의 영역을 구분 짓지 않는 끊임없는 증식을 자기 스스로 감행해 나감으로써 독창적인 예술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다. 광기를 창조로 발전시켜 무한의 자아를 찾아낸 그녀의 예술세계는 회화뿐만 아니라 설치와 환경작업 그리고 퍼포먼스에도 영역을 넓혔고 소설과 시집 그리고 영화에도 자신의 이름을 새길 수 있었다. 그녀의 예술은 사회나 환경이 철저하게 세분화 혹은 제도화 되어 버린 현대에 있어서 절제로 분할될 수 없는 사랑과 생명, 우주라고 하는 것을 통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마련해 주고 있다. 이처럼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철학적 배경과 달리 그녀의 작품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트와 유머, 공간을 삼켜 버릴 것 같은 강렬한 색채와 대범한 시각적 풍요로움은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그녀의 예술적 경지와 신생 미술관의 기획이 적절히 맞아 떨어진 셈이다. 개막 7주 만에 유료관람객 16만명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은 사전에 철저한 전시기획과 홍보마케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대구미술관을 처음 찾은 관람객들에게 미술관 공간이 주는 규모와 전문성으로 특별함과 함께 고급스러운 인상을 우선적으로 제공했다. 그리고 미술은 쉽게 근접하기 힘들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해 만져보게 하고 조각품속으로 들어가서 사진도 찍어 보게 하였으며 심지어는 작가처럼 땡땡이 스티커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어 보는 체험프로그램들도 함께 마련함으로써 미술에 대한 재미를 더해 주었다. 이러한 요소들이 결국 경험과 기록을 중요시 하는 현대문화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이런 결과를 낳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모든 예술이 이처럼 흥미와 재미를 유발할 수 있는 소재들로 구성되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전시는 무거운 색상이 주는 무게감으로 진지함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추상미가 요구하는 형상에서 이해하기 힘든 해답을 요구하는 전시회로 따분함이 절로 생겨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들 모두는 현대에서 만들어진 시각예술의 한 장르이며 작가들이 일반인들에게 던지는 질문하며 메시지들이다. 이러한 어려운 미술을 어떻게 관람객들에게 쉽게 전해주느냐가 미술관 본연의 목적이며 의무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왕이면 쿠사마 야요이 전시 처럼 많은 관람객을 동원할 수 있는 전시회를 기획해 낼 수 있다면 더 말할 여지도 없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