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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초월 채용방식`과 창의적 인재

등록일 2013-09-16 02:01 게재일 2013-09-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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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명수 포항대 교수·관광호텔항공과

취직 못한 막내아들을 가슴에 품고 사는 어미들이 이 땅엔 많다. 그 어미들의 심정을 그린 유안진의 시 `밥해주러 간다`전문을 소개한다.

“적신호로 바뀐 건널목을 허둥지둥 건너는 할머니/섰던 차량들 빵빵대며 지나가고/ 놀라 넘어진 할머니에게/ 성급한 하나가 목청껏 야단친다/ 나도 시방 중요한 일 땜에 급한거여/ 주저앉은 채 당당한 할머니에게/ 할머니가 뭔 중요한 일 있느냐는 더 큰 목청에/취직 못한 막내 눔 밥해주는 거/ 자슥 밥 먹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뭐여?/ 구경꾼들 표정 엄숙해진다”

정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선 어느새`취직 못한 막내 눔`만 늘어가고 그 자식 때문에 적신호로 바뀐 건널목을 허둥지둥 건너는 이들도 참 많아졌다. 그 모든 게 나의 일이자 내 가족의 일이기에 구경꾼들 표정이 엄숙해질 수밖에 없다. 취직 못한 막내아들은 올 하반기부터 새로운 인재채용방식에 적응해야만 한다. `스펙 초월 채용방식`이라는 `열린 고용`의 바람을 타고 시대의 흐름에 맞는 `창의적 인재`로 변신해야만 한다. 스펙 초월 채용방식은 기존의 학점이나 어학 점수 등 이력서상의 단편적 기록을 넘어서려는 것이다. 지원자가 자신의 경험, 스토리, 장기 등을 발휘하게끔 유도하는 방식을 통해 지원자의 잠재 역량과 가능성, 인성 등을 파악하려고 한다. 이제는 공기업까지 SNS를 활용해 `창의적 인재`를 채용하고 SK와 KT는 SK바이킹챌린지와 KT온라인스타오디션 등 오디션 전형을 통해`창의적 인재`를 선발하는 오디션 채용을 시작했다. 현대자동차는 길거리캐스팅이라는 이색적 방법도 도입했다. 그리고 잡코리아는 이러한`스펙 초월 취업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형태의 SNS 플랫폼인 온라인 포트폴리오 서비스`웰던투(Welldone.to)`를 10월에 오픈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러한 인재채용방식에 반발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20년 준비한 학력·스펙은 취업준비생들의 지식·성실성·실행력이 가장 잘 반영된 자료이자 사회적 요구와 규범을 따르는 순응성이 드러난 자료인데 그렇게 중요한 자료들을 폐기해버려도 되느냐? 전기를 공급하고, 국가 통신망을 관리하고, 기간시설을 건설하는 공기업 업무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창의성이냐? 기업에서 영화, 만화, 문학, 컴퓨터소프트웨어 등과 같은 창의성이 중요한 사업을 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기업에서까지 스펙 파괴를 통한 창의적 인재발굴에 팔을 걷고 나설 필요가 있을까하는 시각이 엄존한다. 이제 와서 스펙을 내팽개치는 건, 우리 사회가 젊은이에게 집단사기를 치는 게 아닐까하는 극단적 시각도 있다. 결국 면접에서 외모만 남는 게 아닐까, `성형 권하는 사회`로 내달리지는 않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 13일 오후 청와대에서 미래학자 나이스비트 박사 부부와 만났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창조경제의 성장과 창의적 인재양성`차원에서 우리 교육에 대해 언급했다. “교육이 어린이들의 무궁한 상상력을 키워주는 쪽으로 가야하는데 어떻게 보면 입시제도 등으로 누르는 게 아닌지 걱정”이라고 했다. 바로 그 걱정에서부터 차근차근 우리 경제와 교육의 현안들을 풀어가야 하지 않을까? 결국은 우리의 초·중등교육 현장에서부터 실마리를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선행학습과 그에 부응하는 각종 시험제도가 남아 있는 한 그리고 거기에 기대서 `공포 마케팅`을 매개로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는 한 창조경제에 부응하는 인재의 싹을 틔우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기업과 대기업의 스펙 초월 채용방식은 하나의 현상이지 본질은 아니라고 본다. 창조경제 생태계를 위해 총과 총알을 주면서 젊은이들이 겁 없이 방아쇠를 당기도록 독려해도, 100대1에 육박하는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공시족이 사라지지 않는 건 왜인가?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이 임대업자`라고 당당히 적는 나라에 살아도 그리 불편하지 않는 건 또 왜인가?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은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항상 바로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뜻이다. `취직 못한 막내 눔`과 그 어미는 스펙 초월 채용방식도 창의적 인재양성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저 일자리를 가져서 생활이 안정되길 바랄 뿐이고, 견리사의(見利思義)하고 싶을 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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