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또 다시 시끄럽다. 당선초부터 종북좌파로 지목돼 제명압박을 받아왔던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이번에는 국정원과 검찰에 의해 내란음모사건의 장본인으로 지목돼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지난 해 부정경선 파문의 주역으로 일약 유명해진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은 어떤 인물일까. 이 의원은 공식 프로필에서 한국외대 용인캠퍼스를 졸업했고, 전 사회동향연구소 대표를 지냈다는 사실외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전남 목포출신의 이 의원은 1980년 성남 성일고를 졸업하고, 한국외대에 진학한 뒤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에 연루돼 수배 생활을 한 후 실형을 살았다. 수배와 투옥 과정에서 군무원이던 누나는 이 의원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정직된 뒤 병에 걸려 2005년 사망했고, 어머니 역시 암투병을 하다가 2008년 숨졌다. 이 과정에서 아내와 이혼했으며, 자녀는 1남1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의 장남은 24세 이전에 출국한 것으로 병무청에 신고돼 있는 점으로 미뤄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석기 의원이 통합진보당 대표로서 금배지를 달게 된 배경 역시 자세히 알려져 있지않다. 그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이 시작되기 이전만 해도 당내 유명인사가 아니었다. 입당한지 3개월도 되지 않아서 비례대표 후보에 등록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공개한 프로필 역시 민중의 소리 이사, CNP전략그룹 대표, 사회동향연구소 대표로 일반인에게 생소하며, 당과도 직접 연관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비례대표 경선에서 1위를 하고 난뒤 비로소 `경기동부연합(또는 당권파)의 숨은 실세`로 정치권의 조명을 받았다. 야당사에서는 당내 핵심 브레인으로서 오랜 기간 헌신한 전략통이 비례 대표로 국회에 입성하는 것은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민혁당 잔존세력들이 경기동부연합을 장악했고, 경기동부연합은 이 의원이 졸업한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기에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즉 민혁당 사건으로 복역한 이 의원이 경기동부연합의 지지를 업고 통합진보당 비례대표에 당선된 것이란 설명이다.
이 당선자의 정치성향은 모호하다. 종북주의자였는지, 북한 주체사상을 신봉했는지도 분간이 어렵다. 그는 이런 질문에 대해 “생각과 사상이라는 게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것”,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민주주의자”, “국민을 위해서 살고 싶은 마음이 제 사상의 본질”이라는 선문답식 답변으로 일관해왔다. 그는 자신이 2년6개월형을 선고받은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에 대해서 조차도 그는 “당시 수배 중이라 민혁당에 가담해 활동한 적이 없다”고 연루사실을 전면 부정했다. 자신은 사법피해자란 것이다.
좌파로서의 정체성이 불분명하지만 우여곡절끝에 국회에 진출한, 종북주의 성향을 가진 운동권 출신인사가 민의의 상징인 국회에 진출해 온갖 구정물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어쨌든 정치권 분위기로 봐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역의원이 내란음모혐의로 기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생길 판이다.
이같은 일이 빚어진 이유는 뭘까. 지금은 대부분 40대 후반~50대 중반이 된, 이른바 386세대(1990년대에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을 가리키는 말)들은 군부독재를 경험한 세대여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복역을 했다고 해서 꼭 좌파나 종북세력으로 비하하지는 않는다. 그러다보니 사회주역으로 부상한 386세대들은 좌파활동으로 인한 전과에 대해서도 온정적인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고, 이런 분위기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친북세력이 국회에까지 뿌리내리게 된 단초가 된 것은 아닐까.
이제라도 정치권은 종북세력에 관한 한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사상적 자유가 아무리 소중하다해도 우리 민족이 피흘려 지켜온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는 세력에는 가차없는 철퇴를 내려야 한다. 민심은 천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