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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최선 동화작가
등록일 2013-08-14 00:29 게재일 2013-08-1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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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 동화작가

며칠째 낯선 곳에 지어놓은 작업실에서 우두커니 앉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지금 나에게는 휴대폰도 전화기도 TV도 없다. 라디오도 며칠째 켜지지 않았다. 지독한 외로움이 나의 등을 떠민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송 위에 새끼를 품고 있는 학들의 지저귐이 크게 들려온다. 싱그러운 풀 냄새가 나의 복잡한 머릿속으로 쏴 하고 스며든다.

옛날 양반가의 아낙들은 막무가내 밀려오는 외로움을 어떻게 견디었을까? 그래서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봉당(封堂)을 놓고 작은 뜨락을 만들었을까?

지금 나의 남새밭에는 갖가지 채소들이 방글거리고 있다. 그리고 작업실 위에는 어미 학이 새끼를 품고 사랑을 나누고 있다. 아빠 학이 부지런히 먹이를 날라다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 눈물겹다.

인연(因緣)이란 대체 무엇일까? 200년째 학이 날아드는 학 서식지란 이유 하나만으로 낯선 곳에서 새롭게 인연이란 것을 맺었다.

나를 잠깐 스쳐갔던 인연들도 있다.

우연히 오르게 된 버스에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 보고 아무 말 없이 내렸던 사람이 그것이다.

대중목욕탕에서 잠깐씩 서로의 등을 밀어 주던 사람, 전통시장에서 사소한 일로 언쟁을 부렸던 인연도 있다. 때로는 스승이 되기도 하고 제자가 되기도 한 인연도 있다.

동네 시장에서 만나 나에게 서예를 배웠던 주부학생들과의 인연, 내가 배웠던 스승과의 인연.

얼마 전에 초등학교 4학년 담임 선생님과 통화한 적이 있다.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스승과 제자사이의 대화들이 오갔다.

아이를 사이에 두고 만난 학모(學母)와 스승으로써의 인연….

스님과 신도로서의 인연, 그리고 잠깐씩 옆자리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서로의 기도만 하고 헤어진 도반,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심하게 다투고 원수처럼 헤어진 악연(惡緣)들….

나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학창시절 한 남자와 펜팔을 했던 인연도 있었다.

여학교 때 위문편지를 썼는데 그중 답장이 온 한 군인 아저씨가 바로 그였다. 그는 군의관이었고, 나는 졸업을 해버렸다. 그리고 호랑이 같은 오빠들의 눈을 피해 사촌 동생 집 주소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깐 스쳐지나갔던 어긋난 그와의 인연을 생각해 보았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나의 첫 사랑의 인연이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처음 본 얼굴이 아닌 듯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어디서 보았을까? 그도 나를 힐끔거리며 지나간다. 그러나 둘은 아는 채를 하지 않았다. 도무지 기억나지 않지만 낯설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전생과 윤회설을 믿는다. 그는 그런 사람 중에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렇듯 스치는 인연 속에 특별한 인연이 나타나기를 소망하며 매일같이 서성인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렇다면 나는 타인에게 어떤 인연일까? 타인이 기억해 주는 나는, 친절하고 좋은 인연 이었으면 한다.

전생이 있다면 후생도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 굳이 윤회설(輪廻說)을 따지지 않더라도 나는 전생과 후생(後生)을 믿고 싶다.

그래서 그들이 다음 세대에 나와 다시 만나는 인연이 되더라도 서로 얼굴을 붉히거나 논쟁을 벌이는 그런 인연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무수한 인연 중에서 아직 절반 밖에 만나지 않았다. 아직도 만나게 될 혹은 스치게 될 인연들에게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를 위해 나를 내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좋은 인연을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색투명한 하늘을 자신 있게 팔 벌려 세상을 품는 학같은 인생을 살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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