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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행복

등록일 2013-08-01 00:17 게재일 2013-08-0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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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인자 시인

언젠가 공연장에서 오랜 지인을 만났다. 20년 만이었다. 독신주의를 고집하던 그녀는 시골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집에 딸린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한적한 시골 생활을 한 지 오래 되었단다. 농사가 끝나고 여유 있는 때는 인도나 외국 등지로 훌쩍 여행을 떠난다고도 했다. 약간 거무튀튀하게 변한 얼굴은 나이보다 젊고 건강해 보였고 소박한 외양과는 달리 눈빛은 빛나 보였다. 20년 전 그녀는 도시에서 음악다방을 운영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었다. 편한 도시를 떠나 혼자 시골 생활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보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도시의 문명을 버리니 자연을 따르게 되고 그러다보니 단순해지고 편안해지더라고. 평온하게 웃는 모습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를 버리고 홀연히 시골로 들어간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자동차나 전철도 없는 황량한 사하라 사막. 그곳에 지도나 표지판이 아니라 별과 은하수를 보고 새로운 목초지를 따라 끊임없이 유랑하며 사는 유목민 부족이 있다. 인디고 빛 두건과 푸른색 베일을 둘러쓴 투아레그족이다. 어느 것에도 구속되지 않고 유랑하는 그들은 한없이 자유롭다. 그러던 어느 날 그곳을 취재 하러 온 한 여기자의 가방에서 책 한 권이 떨어졌다. 한 투아레그 소년이 그 책을 집어 주자 여기자는 그 소년에게 책을 선물로 준다. 책을 받은 소년은 책 속의 그림들에 매혹되었고 그날 이후 오직 학교에 가서 글을 배워 책 속 그림에 나오는 그 꼬마 주인공의 이야기를 알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했다.

우여곡절 끝에 소년은 아버지를 졸라 매일 30km가 넘는 거리를 걸어 학교에 다닌다. 마침내 글을 배워서 읽게 된 그 책은 생텍쥐베리의`어린 왕자`였다. 소년은`어린 왕자`가 태어나고 사라진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풍경이 바로 사막에 사는 자신들의 모습과 같다는 것을 발견한다. 소년은 자신과 같은 어린 왕자들의 형제들이 아직도 사막에 살고 있음을 말해 주기 위해 이미 고인이 된 생텍쥐베리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로 가려고 마음먹는다.

그리하여 사막에서 근처 작은 도시로, 거기서 좀 더 먼 도시로, 또다시 더 크고 먼 도시로 향하다가 그 소년은 스무 살 청년이 된다. 그 무렵에 극적으로 프랑스에 도착한 사막의 투아레그족 청년 앞에 펼쳐진 문명 세계는 충격이었다. 사막의 그 청년은 도시에 풍요로운 문명 생활에 감탄한다. 점차 문명 생활을 배워가던 그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문명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욕심이 많고 조급하며, 고독하다는 것이다. 또 불공평한 것도 많고, 문명 세계 사람들은 그처럼 많은 것을 가졌지만 행복하지 못함을 발견한다. 소중한 삶의 순간들을 음미하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달려가는 문명인. 서로를 고립시키며 욕망만을 쫓아 고독하게 달려가는 그들은 정작 중요한 매순간의 행복을 느낄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욕망과 허구로 가득한 문명 세계를 본 청년은 말한다. 자연에 순종하며 사는 투아레그인들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만 있는 그대로의 삶에 만족하며 스스로 행복을 느낄 줄 안다고. 그들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순간순간을 성실히 살아가며 감사할 줄 안다고. 소설 같은 이 이야기는 실화다. 이 청년의 이야기는 책으로도 엮어져 많은 울림을 주었다.

우리는 지금 바쁜 도시에서 매순간 시간과 돈을 쪼개어 분주하게 살고 있다. 너무 바빠서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을 정도인 사람이 많다. 불필요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우울한 날들을 보내는 사람도 많다. 또한 우리는 스마트폰 없이는 소통이 불가능하고 에어컨 없이는 여름나기가 힘들 만큼 문명의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한 우리가 어느 날 신비하고 낯선 부족, 투아레그족을 만났다고 해서 그들의 세계에 매혹될지는 미지수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너무 문명의 이기에 빠져서 생활하고 있고, 투아레그의 청년처럼 순수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과연 문명이 행복만을 가져다주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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