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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善)을 품으면 만사 형통

등록일 2013-07-23 00:04 게재일 2013-07-2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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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영화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총동창회장

나는 `정의는 살아남는다`라는 신조로 앞만 보고 가는 외골수적인 느긋함에 더러는 손해와 상처를 입을 때도 있다.

좀처럼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내가 아니면 되지`라고 생각하고 넘어 가지만 얼마 전의 일이다. 어느 정치 아카데미에서 `소크라테스의 세개의 채`라는 프린트물을 보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보니까 불미스런 일이라도 생길까봐 염려에서 나온 사전 방지책이라 짐작했다.

소크라테스의 `남이 험담을 하기에 앞서 그 얘기가 진실인지, 선의적인지, 유익한지를 가려서 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명언이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남의 말을 아무런 책임없이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것도 당사자도 모르는 사실과 거짓을 섞어가면서 안그런척 꼼수에 이간질에 인격을 모독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험담으로 날개를 달고 커져가는 수도 있다. 그래서 피해 아닌 피해자 입장에서는 상처받고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일수 없는 일들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이같은 일들은 자기보다 우월하면 부러움의 질투와 시기에 대상을 해치고자 악한 의도까지 품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험담은 소통행위가 아니라 가해 행위이며, 언어를 사용한 악의 유통”이라고 혹자는 말한다. 증명되지 않은 왜곡에 의해 밤마다 잠을 못이루고 가슴아파했다는 사람도 보았다.

또한 요근래에 실례를 들면 사회에서 좋은 일을 많이하는 한 시민단체에서 회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마음먹고 참여를 했는데 정말 아무것도 아닌 오해로 이상하고 황당한 일이 생겨 버렸다.

모니터를 마치고 약속이 있어 점심을 일행들과 못하고 갔는데 거기서 발단이 된 것 같다. 시민단체 사무를 총괄하시는 분이 아뿔싸, 내가 당직자들과 점심을 하러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리송한 말씀도 있다. 나에 대한 전화를 몇통 받았다고 얘기하면서, 듣기가 조금 거북한 “그런 사람을 거기에 넣었냐”고 했다는 말을 몇번이나 되씹었는데 무슨말이냐고 하니까 이상한 웃음을 흘리면서 “아마도 여성단체 쪽에서 흘러나온 얘기 같다”고 했다. 도대체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얘긴지 의아해 하면서 되물었는데 뒤끝이 못내 찜찜하다.

이른바 한 운동체의 헌장과 목적과 이념에 의한 사랑과 정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실천하는 시민운동을 하시는 분이 한 시민에 대한 인격비하의 말들이 가슴에 대못을 박고 진실과 어긋나는 음해로 없는 사실을 부풀리고 자신의 잣대로 함부로 재어서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는 언행임에도 자신들은 대수롭지 않게 행한 것이지만 상대에겐 막대한 정신적 피해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불러일으킴을 왜 모르시는가. 하물며 단장님과 의논해 보고 연락을 준다기에 한량없이 기다렸고 오해임을 알았으면 사과의 말이라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언반구 연락이 없다는 것에, 조금은 섭함이 있다.

요즘 정치권 또한 `귀태` 발언으로 무척 시끄러웠다. 예나 지금이나 `좋은 것이 좋다`는 말이 있다.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하고 잔인한 말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구업(口業)을 지어 공연히 스스로 자처하여 칼날을 불러들이고 자기몸에 상처를 내는 꼴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탈무드에 경고하듯이 남을 험담하면 비수가 되고 그 비수가 돌고 돌아서 부메랑처럼 반드시 자기에게 되돌아와 꽂힌다 했거늘 한번쯤은 모두가 각성하고 되짚어보는 계기가 됐으면 싶다.

각박해지기 쉬운 오늘날, 사회 일각에서는 `남의 말을 좋게하자`라는 문구가 종종 회자되고 있는데 아무리 강조해도 옳은 일이며 이는 곧, 더불어 사는 사회에 인간성 회복의 지름길 임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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