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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다

등록일 2013-07-15 00:22 게재일 2013-07-1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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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정찬 경북도립대 교수·화가

그 옛날 방학이 되면 아주 시원찮은 성적표를 받아 들고 집으로 가는 마음은 즐거움과 걱정이 반반이다. 그리고 신나는 방학이 시작된다. 곤충채집도 하고 그림일기도 매일 쓰고 외갓집에도 모처럼 동생의 손을 잡고 간다. 흐르는 개울에 발가벗고 멱도 감고 산에 가서 칡도 캐먹는다. 매미가 맴맴 우는 가운데 원두막에서 참외나 수박을 먹거나 소나기가 내리니 발가벗고 마당 가운데서 춤을 추던 기억들이 새삼 생각이 난다. 자연을 가까이 하고 동심의 세계를 천진무구하게 추구하던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 우리는 방학책 한 권의 숙제도 다하지 못한채 놀기에 바빴다. 그늘나무 아래서 할머니의 부채 바람을 쐬며 낮잠에 취하고 우물 속에 넣어 둔 시원한 수박을 가족끼리 오순도순 나눠 먹던 그 시절이 참 그리워진다. 저녁마다 들리는 청년들의 노래 소리, 도시로 유학 간 동네 형의 연예 담, 자기 자랑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듣던 그 시절이 불과 30년 전의 일이다.

지금도 기억하는 방학은 나에게는 그림도 그리고 만들기도 하고 골목대장 하는 일이 전부가 아닌가 싶다. 그 중에서도 그림을 그리는 일은 신나는 일이었다. 커다란 도화지에 크레용이나 수채 물감으로 그리고 싶은 그 모든 것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그렸다고 생각 될 정도이다. 산도 그리고 들판도 그리고 초가집도 기와집도 커다란 미루나무도 어림없이 그림 속에 등장했다. 곤충채집하는 장면, 목욕하는 장면, 수박 참외도 그렀다. 뿐만 아니라 잘 그린 선배의 그림이나 공작도 반드시 따라 해놓아야 속이 시원했다. 그리고 부모님 몰래 형이 빌려 놓은 만화책의 표지, 그것도 주인공 검객의 모습을 그대로 베꼈다. 그리고는 벽에다 액자 높이에 다닥다닥 붙여 놓았다. 또한 잔치 날 사용하는 병풍을 묘사해 보기도 하고 그 때부터 호랑이 토끼는 수 없이 그려 이집 저집 선물하고 붙여 주었다. 부끄러움도 모르는 시절이었다. 무른 흙을 개울가에서 가져와 잘 이겨 손수 만든 공작, 그리고 그늘에 말려서 아궁이에서 구워 냈던 기억도 얼마나 좋은 것인가. 사람도 만들고 동물도 만들고 탑도 만들었다. 물론 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의 배려가 필수였다.

그런 방학이 지금도 존재를 한다. 다만 유년시절의 추억으로 남을 만한 방학이 될지는 모르지만 방학은 방학이다. 어린 초등학교시절의 추억은 대단히 중요하다. 경험하고 체험하고 여행을 하며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 놓고 해보는 그런 방학을 아이들은 기대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세대에 경험한 그런 추억은 다시는 없을 것 같아 안타깝다. 모르긴 해도 방학이 되면 영어학원이나 미술학원이다 수학 학원, 피아노 학원, 바둑학원, 개인교습 등 많은 스케줄이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철저한 스케줄에 의한 일과 꽉 짜여 진 교과목…. 수영장이나 여행가는 것도 부모의 아이디어와 취향을 못 벗어날까봐 걱정이다.

아이들에 의한 방학이 아니라 부모에 의한 방학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 아이들에게 틈이라고는 텔레비전을 시청하거나 컴퓨터에 매달리는 일이 전부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더한 것은 스마트 폰과의 개임전쟁이다. 방치하면 온 종일 개임에 매달릴 수도 있다. 이래 저래 방학은 아이들의 추억꺼리를 단조롭게 하거나 소멸시킨다.

부모로서 아이와 의논해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존중해주면 안될까? 산에도 가보고 들에도 가보고 농촌 시골마을의 친인척 집을 이용하거나 없다면 여행이라도 권해보고 싶다. 아니면 바다나 강가에서 며칠을 보내거나 산사주변의 아름다운 자연림에 취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음악을 하던 미술을 하던 무용을 하던 운동을 하던 평소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면 방학 때 과감히 밀어 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어른이 되어서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이전에 아이의 성장과 사고변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영양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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