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부엉이` 사데크 헤다야트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88쪽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인간의 가장 어두운 내면 풍경을 그린 이 소설은 뛰어난 상징성과 눈부신 묘사, 예리한 통찰로 문학사에 남을 작품이 됐다. 잔혹성과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정작 이란에서는 금서로 지정됐으나 대중들 사이에서는 잊힌 적이 없는 이 책은 새롭고 신비한 페르시아 문학을 선보이는 수준을 넘어 세계문학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받는다.
주인공 `나`는 필통에 그림을 그리는 무명의 화가이다. 어느 날 나의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삼촌이 찾아온다. 삼촌에게 술을 대접하려고 창고로 간 나는 벽 틈새로 하나의 광경을 목격한다. 검은 옷을 입은 한 소녀가 강가의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 앉은 노인에게 메꽃을 건네는 광경이다. 잊히지 않는 소녀의 모습은 나의 영혼을 깊은 전율로 뒤흔들어 놓고, 나는 오랫동안 그 소녀를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라면서 방황한다.
헛되이 소녀를 찾아 헤매던 내 눈앞에 갑자기 소녀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나의 집 앞에서. 소녀는 몽유병자처럼 내 집으로 들어가고, 그리고 곧 내 침대에서 그대로 죽어버린다. 나는 소녀의 시체를 절단해 가방에 넣고 먼 황무지로 가져다 묻는다. 소녀의 죽음 이후 삶의 깊숙한 무의미 속으로 추락해버린 나는 아편과 술의 도움을 빌려 기나긴 일생의 환각 속으로 몰입하는데….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