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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개인전을 다녀와서

등록일 2013-07-03 00:23 게재일 2013-07-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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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정찬 경북도립대 교수·화가

왜 그림만 그리지 학교에 가셨나요? 이런 소리를 선배들이나 후배들이 종종 하곤 한다. 직접 듣기도 하고 지인들이 중계를 하기도 한다. 소위 미술시장이 호황 때의 말씀인데 계속 그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대구에 계속 계셨더라면 더 유명해 졌을 것 아닙니까? 다른 사람 누구는 유명해져 난리인데 권선생은 뭐합니까? 등의 말도 마찬가지이다. 그래 내가 떠난 16여년 사이 옥션도 화랑도 모두 인기 작가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돈을 많이 벌었다고들 한다.

자 그렇다면 인기작가의 기준은 무엇인가? 사과나 대추, 심지어 꽃, 소나무 등을 사진처럼 잘 그리는 기술보유자들이 인기작가인가요? 인기작가의 작품을 베끼는 작가가 인기작가인가요? 참 어려운 질문이다. 소위 잘 팔리는 그림이 인기 작가이고 유명작가라면 할 말이 없는 세상이다.

그래도 국민화가 박수근은 쌀 한가마니를 가지고 그림을 사가져 간 고객이 환불을 할까 봐 그날 밤에 이사를 갔다고 하고 추상화 거두 하인두는 우리나라 대표화랑에서 초대전을 하였지만 작품이 전혀 팔리지 않았다. 또한 80년대 대구전시회의 이우환 조각은 전시 후 둘 때가 없어서 K대학 잔디밭에 사정을 해 갔다 두었다. 이중섭은 피난시절 대구에서 담배은박지에 수없는 묘침 드로잉을 하여 신문사의 삽화를 희망했지만 편집장은 과감히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 이분들은 국민적 화가로 대접을 받고 있지 않은가?

한편 소위 국전과 미술대전에서 구상을 추구하는 수상작가들은 당대에서 수입이 짭짤해 명예와 부를 함께 누렸다. 하지만 그들의 공모전 양식은 그야 말로 수묵의 전통을 고수하거나 자연과 인물을 베끼는 기술로 입상을 했다. 그래서 고객들에게도 인기가 만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분들의 설자리가 어디 있는가. 이러한 모습과 상황은 지금과 유사하다. 한 작가가 탄생하여 자리를 잡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옥션이나 화랑, 심지어 아트페어 같은 곳에서 잘나가는 일시적 현상이 과연 오래 지속 되었는지 곰곰이 살펴 볼 일이다. 작가가 추구할 최선의 목표는 자신의 독립된 철학이 담긴 작품을 탄생시키는 일이다. 사진같이 잘 그리는 기술도 필요하고 기초를 다지기 위해 유명작가의 작품을 요리조리 베끼는 것도 필요한 판단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상품으로 버젓이 내어 놓는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그러한 이면에는 작가의 심리적 의도도 있겠지만 화상들의 부추김이나 묵인도 큰 몫을 한다. 어느 분의 작품을 모방했는지를 뻔히 알면서도 묵인하거나 오히려 권장하는 화상의 태도야 말로 심각한 저해 요인이다.

최근에 대구 모 화랑에 후배 전시회에 모처럼 다녀왔다. 그 전시회를 간 이유는 홀로 열심히 작품과 투쟁하는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여러 작가들의 개인전 카다로그가 연구실 한쪽에 수북이 자리하고 있지만 정말 가보고 싶은 전시회는 아주 귀하다. 왜 이런 작업을 할까? 왜 이런 작가를 초대할까? 아니 기초도 안돼 있잖아! 등 나름의 실망이 많다.

지금은 21세기이다. 사실을 추구하는 고전주의는 우리로 치면 조선중기 쯤 다 끝난 양식이 아닌가? 전통산수화 이것 역시 18세기에 마감한 우리의 그림 아닌가?

나 나름의 기준이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 또 사실이던 모방이던 그 가치에 따라 예술의 기준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열심히 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런 것 외는 없었다. 그들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대 선배로서 확인의 조언을 들려주고 싶을 따름이다. 조선시대 신사임당은 자식이 10년을 절에 가서 학문을 터득하기를 원했고 60중반의 가왕 조용필은 10년의 세월동안 칼을 갈고 나타났다. 그것도 더 철저한 연구와 자기만의 색깔을 담아 당당히 나타났다. 한번 모두 자신과 비교 해보라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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