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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관계 소묘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5-13 00:35 게재일 2013-05-1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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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 관계가 화젯거리이다. 몇몇 우월적 입장을 앞세운 자들의 막말이나 횡포가 상식을 넘어서자 억압되었던 갑을 문화에 대한 불만 표출이 집단적으로 온라인을 타고 번지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이 부담스러운지 공공기관과 백화점 등에서 갑을 관계 표기 방식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본질과는 먼 대처 방식이라 별로 달갑지 않다.

갑을이란 용어는 처음엔 단순한 익명의 표기법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가와 나`이면 어떻고 `A와 B`이면 어떻고 `사과와 오렌지`면 어떻고 심지어 `나와 너`이면 어떻단 말인가. 임의로 출발했을 그 용어가 우리 사회 밑바탕을 관장하는 계급의식으로 점차 왜곡·변질된 것에 씁쓸할 뿐이다.

우월적 지위와 아쉬운 입장으로 대변되는 갑을 관계는 따지고 보면 기업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매순간 의식하지 않을 뿐, 우리 인간 삶 자체는 갑을 관계의 총화이다. 혈연 학연 지연으로 얽힌 여러 관계망에다 유교적 관습 및 상부하달식 기업문화 등에 길들여진 상태에서 단 한시라도 자유인이 된다는 건 어렵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위치가 `을`이라고 생각한단다. 당연한 반응이다. 조금이라도 우월적 입장이 되었을 경우 우리는 그것을 별 고민 없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누리는 것에 별 감흥이 없다. 하지만 아쉬운 입장이 되어 서운하고 갑갑한 일을 당하다 보면 피해의식이 도드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약자에 쉽게 공감하는 이유는 부당함은 언제나 약자의 것인데다, 그 부당함의 배에 언젠가는 나도 탈 수 있다는 보험 심리 때문이다.

`갑을`이라는 용어를 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널리 퍼져 굳어진 계급의식이나 상하문화의 틀을 벗어나는 일이다. 갑을관계는 윽박지르면 따르는 사이가 아니라 상생하고 윈윈하는 관계여야 한다. 사회구조상 완벽하게 동급이 될 수 없다면 더 약자에게 배려하는 역지사지의 마음이라도 있어야 한다. 진정성과 효율성이 담긴 인격 수양은 사람뿐만 아니라 조직이나 기업에도 필요하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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