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어떻게 왔는지 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쁜 날들이 가고 있다. 무슨 일인지 해가 거듭할수록 잡무들이 늘어나는 게 교직이 되었다. 급기야 선생님들의 푸념에는`학생들 가르치는데 전심전력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공문 처리하느라 진이 다 빠지네`가 가장 많다. 학교를 기업처럼 바꾸어 버린 게 지난 5년인데, 사업을 공모하고 사업을 낙점받으면 잘 시행해서 실적위주로 인센티브를 받고, 시행 과정을 보고하고, 그것을 감사하는 기관이 있어 실제 초등학생 숙제검사하듯 하니 일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칫 교육의 본질은 뒷전이고 형식적인 행사와 겉치레가 많아지기 마련인데, 교무업무시스템이나 학교회계업무처리시스템 등 각종 행정시스템들이 여러 개 설치되고 나니 더욱 업무가 폭주한다. 명령을 내리는 쪽은 쉽게 내리도록 됐고, 실제 시행하고 행동해야 할 쪽에서는 더딜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조금만 늦추면 곧바로 전화가 오고,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벽에 구멍이 있어도 형식적으로 겉만 발라 마감처리하는 못된 미장이 같이 된다. 시스템으로 명령을 내리는 상위부서는 여러개여서 서로의 업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충돌할 때 일선학교는 어느 장단에 춤춰야할 지 모를 때도 생긴다. 이를테면 한 쪽에서는 보안을 강조하고, 한 쪽에서는 정보공개를 강조하니 웃음만 나온다.
뜬금없는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요즈음 호두가 값비싸다고 한다. 그런데 호두나무를 심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한다. 호두나무가 귀하니 호두가 비쌀 수밖에 없다. 그럴만도 한것이 호두나무는 땅에다 심고 5~6년은 지나야 첫 결실을 맺고, 20년에서 30년은 지나야 최대로 수확할 수 있다. 사람들은 5~6년 기다려야 한다니 기다림이 두려워 심지 않는 것이다. 심고 곧바로 수확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 사람의 성품, 그것이 문제였다. 교육현장도 성과를 빨리 내기위해 안달복달이다. 교육이란 호두나무를 심어놓고, 오랜 후에 호두열매를 거두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기다림과 여유 속에서 만들어가는 것이 교육일진대 이제 공모제나 온갖 시스템과 같은 것은 걷어내고 교육의 본질을 찾아갈 때가 된게 아닐까. 교육의 본질은 다른 게 아니다. 바로 여유에 있다.
여유가 있으면 생각도 하고, 창의력도 발휘하고, 온갖하고 싶은 동기도 유발되는 것인데, 그것 없이 가두어놓고 쥐어짜내니 동기유발도 안되고, 자기주도성도 없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귀차니스트만 양산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고등학생 때는 아침과 오후 통학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여유가 있었다. 친구들과 매일 저녁 별일 없이 모여서 떠들기도 하고, 들판이나 마을을 쏘다니기도 하고, 강가에 나가 낚시도 하고, 부모님 일을 돕기도 하고…. 공부는 언제했었나 싶다. 그래도 공부를 했었고, 하기싫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 별로 걱정도 없이 진학했었고 어쩌면 그런 여유가 나를 이렇게까지 만든 스승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친구들도 굳이 애써서 진학할 필요가 없으면 공장으로, 장사하는 길로 갔는데, 꽤 성공한 경우가 많다. 교실에 앉아 책과 머리로만 무엇을 알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란 것이 오래전에 드러났다. 차라리 책을 읽고 토론하거나 세상을 여행하고, 직접 체험하는 편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 아이들을 그냥 교실에 가두어놓고, 두꺼운 옷을 입히고, 일제히 참새처럼 조는 것을 방치하고 있다.
학교에서 바라보는 현실은 `나라와 민족의 앞날이 걱정된다.`이다. 봄날 교사가 여유가 없으면 학생도 여유가 없다. 꽃이 지고, 피고, 다시 져도 그것을 돌아보는 사람도 없고, 피고 지는 이유를 생각해보는 이도 없다. 학교의 봄은 저만치 홀로 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