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극복해야 할 현안과 국민 경제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새 정부 출범 일주일이 되도록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국정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1주일만에 대국민담화를 통해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통과를 호소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국민의 삶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야말로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매우 비장한 표정과 말투로 이어진 이날의 대국민담화를 본 국민들은 두 갈래로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한쪽은 야당을 강하게 질타하며 소신있게 밀어붙인 데 대해 “속 시원하다. 잘한다.”고 했고, 또 다른 쪽은 “불통의 정치, 밀어붙이기 정치가 시작됐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다시 1주일이 지났다. 국회는 정당ㆍ정파 간 공방만 요란한 채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아직도 여야간 감정싸움으로 번져 머리채를 휘어잡고 뒤흔드는 모습이다.
국회가 처리해야 할 정부조직법 개편안 통과를 두고 대통령이 나서서 진심을 몰라준다며 야당에 면박을 줬으니 여야 협상이 원활히 진행될리가 없다. 야당도 지켜야 할 체면과 명분이 있는 데, 대통령은 “모든 것이 야당의 책임”이라고 국민앞에 선언하고 항복하라고 종용하는 양상이 됐으니 말이다. 결국 정부조직법 개편안 늑장처리는 대통령의 밀어붙이기 대국민담화에 이은 여당의 대통령 눈치보기, 거기에 편승한 야당의 명분싸움이 어우러져 빚어낸 3자 합작품이 됐다.
야당이 잘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 앞서 대선에서 진 민주통합당의 형편과 전당대회에서 정식 선출되지 않은 임시 지도부의 입장을 배려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 자신 역시 과거 10년 동안 야당 지도자로 여당의 핍박을 받았지 않았던가.
정부조직법 개편안 늑장처리로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국정마비 상태에 빠졌다. 매주 화요일 개최해온 국무회의 조차 대통령과 총리외에 15명 이상의 국무위원이 참석해야 하는 구성요건을 갖추지 못해 열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각료들과 국무회의를 함께 열지 않겠다는 고집도 화근이었다. 결국 11일에야 당초 방침을 꺾고, 이명박 정부 각료 2명과 함께 새로 임명된 13명의 장관을 참석시켜 첫 국무회의를 연다니 민망하다. 뒤늦게나마 첫 국무회의를 서두른 것은 북한의 도발 가능성 고조 등 안보위기 속에 정부 출범 보름이 되도록 국정공백을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현재 박근혜 정부의 위기는 독선과 일방통행의 불통정치에 기인한다. 이래서는 창조경제의 꽃을 피우기는 커녕 싹도 틔우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크다. 대화와 타협, 국민대통합정신은 어디다 내던지고 5년의 긴 항해를 떠난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술과 제왕적 대통령의 카리스마를 벗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직을 수행해나가야 한다. 설득과 포용의 리더십으로, `통치`가 아닌 `정치`를 해나가야 한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이 난관에 부닥친 것도 대통령이 여야 의원들과 수평적인 대화를 하지 않고 `소신`과 `국정철학`이란 이유로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기 때문이 아닌가.
이쯤에서 혜민스님이 쓴 `멈추면 바라보이는 것들`이란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들려주고 싶다. “지금 처한 상황을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가 없다면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내 마음가짐을 바꾸라. 원래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없다. 내 마음의 상(相)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니 좋은 것, 나쁜 것이 생기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