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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소식

등록일 2013-03-08 02:21 게재일 2013-03-0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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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화경북여성정책개발원 연구위원
벌써 3월이란다. 동장군의 서슬 퍼런 기색은 온데 간데 없고, 바람 속에 봄 향기가 실려 온다. 공기가 다르니 기분이 들뜬다.

경칩도 지났으니 겨울잠을 자는 땅 속 식구들이 깨어나겠지. 두터운 먼지 씻을 수 있도록 촉촉한 비도 한 줄기 뿌려주면 좋겠다. 봄이 오는 길이 한 길이 아닐진대 그 길 잃어버리지도 않고, 매년 이렇게 찾아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며칠 전 모처럼 베란다를 서성거리던 남편이 바위단풍에 싹이 돋고 꽃도 보인다며 흥분한 목소리로 와 보란다. “정말이네. 여기도, 저기도. 조그만 애기 손같다”일전에 베란다 청소를 하며 거무튀튀하던 뿌리를 다듬고 물도 바꾸어 주었더니 이렇게 보답을 한다. 몇 가닥 보이지 않는 새싹을 서로 찾으며, 바람이 달라졌다는 둥, 날씨가 포근해졌다는 둥, 목련 꽃봉우리가 제법 부풀었다는 둥 서로가 목격한 봄기운을 나누니 옛 생각이 절로 난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봄을 맞는 나만의 특별한 의식이 있었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땅이 들숨을 쉬며 땀 흘리는 기색이 보일 때면 어김없이 들판으로 나가 냉이, 꽃다지를 찾아 다녔다. 추위 때문에 옴쭉달쭉 못하고 갇혀 지낸 지리함도 끝내고, 아직 멀찍이 오고 있는 따뜻한 봄을 한시라도 당겨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집에서 멀지 않는 개울둑 양지쪽을 가장 먼저 찾았고, 볕 좋은 그 일대 논밭도 꼼꼼히 살폈다. 어쩌다 파릇한 냉이 이파리라도 발견하는 날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제 봄이야`하는 신호를 찾은 것만 같아서. 의식의 마지막은 일봉산이라 불린 뒷산에 올라 참꽃 봉우리가 얼마나 부풀었나, 고개를 내민 할미꽃 싹은 없나를 찾아보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할미꽃 싹은 하얗고, 보송보송한 솜털이 감싸고 있어 정말 어린 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마른 가지에 긁히고 찔릴 때도 많았지만 어떻게 그 설레임과 바꿀 수 있을까?

돌아오는 길에서야 혼날 일이 두려워, 먼지 싹싹 털고 친구 집에 다녀온 듯 태연하게 마당에 들어섰지만 셜록홈즈 뺨치는 엄마는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너는 하루 종일 어딜 그렇게 헤매고 다니냐”며 혼을 내시곤 했다. 그래도 이듬해면 또 어김없이 들판을 나섰던 그 때, 넓은 들판이며 산은 내게 정원이나 마찬가지였고, 계절의 변화를 오감으로 실감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은 커다란 축복이었다.

나이 들고 도시생활에 익숙해진 요즘에야 찬바람 맞으며 밖을 쏘다닐 일도 없고, 아파트 안에서 고작 화분 몇 개를 돌보는 것으로 소임을 다하고 있으니, 어린 시절에 비해 집은 넓어졌을지 몰라도 내 정원은 훌쩍 줄어든 셈이다. 호기심도 낭만도 그만큼 줄어들었겠지.

어쨌건 한 계절을 보내고 맞는 짧은 이 시간이 아쉬워 주말에는 뒷산에라도 나가보자며 의기투합하고 아이들을 부르니, 두 녀석 모두 아이패드와 휴대폰에 빠져 대답도 하지 않는다. 향기도, 촉감도 없는 가상세계가 무어 그리 좋은 건지 눈길을 떼지 못한다. 안 되겠다. 내일 부터는 봄 소식 하나씩 찾아오도록 밖으로 내몰아야겠다.

따슨 햇살 아래에서 흙냄새도 맡아보고 볼록하니 삐친 꽃봉오리들도 찾아 생명이 꿈틀거리는 이 축복의 시간을 온몸으로 즐길 수 있도록.

그나저나 헌정 사상 첫 여성대통령이 선출되었으니 여성들에게도 드디어 봄은 찾아온 것일까? 그렇다면 어느 때 보다 화사하고 따뜻한 봄날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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