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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박근혜 정부

등록일 2013-03-05 00:50 게재일 2013-03-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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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논설위원

안타깝지만 예견된 일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을 둘러싼 여야대립으로 새 정부출범이 늦어지고 있다. 여야 협상이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규정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은 청와대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고, 신설되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돌연 사퇴하는가 하면 부활되는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정부 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것이 지난 1월30일이니 벌써 한달이 넘었지만 여야는 아직도 쟁점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모두 12차례의 공식회담이 열렸고, 세 차례 시한을 정했으나 타결에 실패해 청와대와 여야 모두 정치력부재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여야가 의견을 좁히지 못한 부분은 종합유선방송(SO) 등에 대한 관할권을 신설되는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길 지에 대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원안 고수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고, 민주통합당도 `방송장악 우려`를 주장하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어쨌든 새 정부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3월까지 처리되지 못한 것은 역대 정부의 사례를 봐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김영삼 정부 때는 2월23일, 김대중 정부 때는 2월17일, 이명박 정부에선 2월 22일 정부조직법이 처리됐다. 노무현 정부에선 개편안이 발의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딱한 처지를 보면 로버트 치알디니박사의 `설득의 심리학`에서 나오는 길거리 살인사건에 대한 분석이 떠오른다. 뉴욕시 퀸스구에서 제노베스라는 이름의 20대 후반의 처녀가 밤늦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집 근처에서 괴한에게 습격을 당해 살해됐다. 뉴욕 타임즈의 편집국장인 로젠탈은 사건 발생 일주일후 시의 경찰국장과 점심을 먹으면서 퀸스구의 다른 살인사건에 대해 질문했는데, 경찰국장은 제노베스 사건에 대해 질문하는 것으로 오인해 어마어마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즉, 제노베스는 수많은 목격자가 지켜보는 앞에서 무려 35분동안이나 대로에서 쫓기면서 3번씩이나 칼에 찔려 살해됐다는 것이다. 로젠탈은 경찰국장의 이야기를 듣고 목격자들에 대해 철저히 조사한 뒤 1면 톱기사로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기사를 게재함으로써 미국 전역을 온통 들끓게 만들었다. 당시 기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30분이 넘는 시간동안 퀸스구에 살고있는 38명의 충실한 시민들은 살인자가 거리를 활보하면서 한 여자를 세차례나 습격해 칼로 찌르는 장면을 물끄러미 구경만 하고있었다. …”

로버트 박사는 이 사건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설득심리학에 있어서 `사회적 증거의 법칙`을 도입했다. 사람들은 무엇이 옳은가를 결정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길거리 살인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은 속으로는 무척 당황해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최소한 겉으로는 모두 침착하게 위기상황을 바라만 보고있는 것을 보고, 사회적 증거법칙에 따라 그 상황을 위기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하게 됐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인선 문제와 불통 브리핑 논란 등으로 취임 전부터 지지율이 44%로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여당이 야당을 강하게 압박하지 못했고, 국민들도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지켜보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즉, 국민들은 이 상황을 위기상황이 아니라 불통정부의 정치력 부재와 야당의 `몽니`사나운 행태가 서로 힘겨루는 상황으로 인식하고 만 것은 아닐까.

박 대통령이 이 시점에서 대국민담화를 내놓은 것은 정국타개책으로 시의적절하다. 하지만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 대립과 청와대의 대처방식은 매우 실망스럽다. 새 정부의 발목을 잡는 야당의 행보도 마땅치 않지만 퇴로없이 야당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는 청와대와 여당의 행태가 마냥 위태위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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